한줄 詩

바닷가 마지막 집 - 손음

마루안 2021. 5. 23. 19:28

 

 

바닷가 마지막 집 - 손음


햇살이 꼬들하다
무거운 고요가 더러운 개 한 마리를 끌고 다니는 정오
빨간 다라이에 핀 접시꽃이나 본다
채반에 널린 납세미나 본다

상자같이 허술한 집에 건들건들 한 채의 배를 타고 앉은 듯
달포째 저렇게 잠겨있는 사내,
이런 개...
설핏한 나이에 죄다 욕으로 마시는 소주를 뭐라 말할까
모든 걸 다 떨어먹고 여기까지 와서
생이 이렇게 요약될 줄 몰랐다
그래 어쩔래, 나 이제 고집 센 쉰이다

창문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
사내를 닮은 집도 말이 없다
그 둘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동안
사내는 선창가나 한 바퀴 돌까 말까

천막 횟집에 상추 쌈을 싸 주느라 난리도 아닌 커플이
입이 찢어져라 좋아 죽는다
확, 불이라도 싸지르고 싶은 저녁이라면 어쩔 것이냐고,

파도 소리 귀에 고이도록 쉰을 넘긴
한 척의 사내 기우뚱, 서럽다


*시집/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걷는사람

 

 

 

 

 

 

자갈치 밥집 - 손음


연탄불에 고등어를 구워 주는 식당을 찾아갔다
생선 좌판을 지나 건어물 가게를 지나
사내 하나가 허겁지겁 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고등어가 익어 가는 동안 허술한 생각을 비워 가는 동안
주인은 그에게 펄펄 끓는 시락국을 먼저 내주었다
혼자 먹는 밥이 서럽지 않으려면
국은 저렇게 뜨거워야 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익숙한 듯 밥을 먹는다
낯선 사람끼리 쓸쓸함을 비벼 먹는다
비린내를 풍기며 기름내를 풍기며
어떠냐며 스스럼없이 마주 앉아 서로의 심장을 데운다
고등어자반이 사천 원이라는 것
누구나 추었던 한때를 기억한다는 것
사람들은 연탄불 같은 주인 여자를 실컷 쬐고 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식사를 마친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간다
대여섯 평이 될까 싶은,
그곳이 그들의 몸을 오래도록 지나간다


 

 

*시인의 말

 

꽃나무 아래 서서 지나가는 세월을 구경한다.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들의 이름이 통증을 만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을 때 잔인해졌다.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