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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연락했다 - 이문재

혼자가 연락했다 - 이문재 혼자가 연락했다 혼자가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 우리가 모닝커피를 마시며 미팅할 때 밥상머리 교육 확대 방안에 관해 논할 때 세대 간 대화 촉진 지원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인류세의 미래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에 참가할 때 혼자가 혼자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산책로 공원 광장을 늘려야 한다고 모든 공동주택의 설계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고 거대 도시를 마을 공동체로 전환해야 한다고 외칠 때 전세계 기득권 세력의 완고한 프레임을 바꾸고 시민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감성적 담론을 마련할 때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년들에게 부끄러워할 때 노년세대의 행동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모색할 때 지구 평균 기온 상승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지구촌 모든 대통령궁 앞에서 치켜들 피켓을 고민할 때 양자역학과 저..

한줄 詩 2021.10.16

모호한 슬픔 - 박민혁

모호한 슬픔 - 박민혁 기다리는 전화가 있었나 봐요, 감추어 둔 희망을 들키는 기분 ​ 미래는 너무 많은 오늘을 약탈해 가고 있다 결국 너는 쥐가 난 슬픔 쥐가 난 왼손을 오른손으로 만졌을 때의 낯선 감촉 같은 거 이제 너는 공휴일에서 제외된 기념일 같다 한 여자애의 전화번호를 암기하는 일 너에게 없던 비립종 같은 걸 사랑하는 일 애인이 너의 이름을 발음할 때 멀미가 느껴지는 일 사랑은 왜 오전과 오후 사이에서만 기생하는지 이런 불가능한 시간이라니 운명이 뿌리고 간 겨우 한 자밤의 슬픔에 나는 이렇게도 엄살을 부리나 아직도 나, 내가 낳은 슬픔을 두고 훗배앓이 중 어쩔 건데, 이런 감정 ​ 모든 연애의 끝은 궁금한 궁금하지 않은 부모님의 굴욕 같은 거 나의 절망 역시 사행성이 짙습니다만, 누군가에게는 여..

한줄 詩 2021.10.16

좋은 사람 - 정욱

이런 영화를 철학적인 작품이라고 하던가. 너무나 평범한 제목이라 재미 없게 느껴지지만 긴장감을 갖고 몰입해서 봤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재밌까지 있는 영화다. 누구나 자신은 그런 대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경석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다. 음주 문제로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혼자 살지만 인상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으로 평가 받는다. 교실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 반에서 왕따를 당해 늘 혼자인 세익이 범인으로 의심 받지만 경석은 믿지 않는다. 부모가 없는 세익은 큰엄마와 함께 살고 알바까지 하며 학교에 다닌다. 딱 의심 받기 좋은 조건이다. 교무실로 찾아 온 학생 하나가 세익이 체육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까지 한다. 상..

세줄 映 2021.10.16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 김한규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 김한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에는 주유소가 있고 주유소의 고객은 자동차라는 사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단순한 사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이미지는 서 있어야 하는 발바닥 때문에 멀리 있는가 전무님이 오시면 90도로 인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들으라는 사실이다 아웃소싱으로 단지 주유총이나 세차용 마포 걸레를 들고 있을 뿐인데 낮은 더웠고 밤은 추웠지 갈아입지 못하는 몸에 식어 버린 가루가 부서지고 모든 냄새는 기억을 만드는 장소였지 그랬을 뿐인데, 90도는 뭉개지라는 말이다 실제로 뭉개지지 않으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거나 서 있는 발바닥을 인정하더라도 실패할 것이다 부어오른 길 위에서 짐승이 새끼를 낳고 있다 출처가 있는 것들이 되새김하는 대장에..

한줄 詩 2021.10.15

가로등 끄는 사람 - 이현승

가로등 끄는 사람 - 이현승 새벽 다섯시는 외로움과 피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 외로워서 냉장고를 열거나 관 속 같은 잠으로 다이빙을 해야 한다. 만약 외로운데 피곤하거나 피곤하지도 외롭지도 않다면 우리는 산책로의 가로등들이 동시에 꺼지는 것을 보거나 갑작스레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잠시 뒤엔 불 꺼져 깜깜한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암 환자가 보일 것이다. 구석으로 숨어든 어둠의 끄트머리를 할퀴는 고양이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외로움과 피곤과 배고픔과 살고 싶음이 집약된, 더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열정으로 고양된 새벽,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다섯시 저기 어디 가로등을 끄는 사람이 있다. 고요히 다섯시의 눈을 감기는 사람이 있다. *시집/ 대답이고 부..

한줄 詩 2021.10.15

Take Five - 웅산 노래 + 이정식 색소폰

# 재즈 가수 웅산의 노래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웅산이란 이름은 그녀가 열일곱 살에 출가를 했을 때 받은 법명이란다. 2년 남짓 승려 생활을 하고 하산한 이유도 가슴 속에 잠복되어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삭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정식의 색소폰과 잘 어울린다. 색소폰에서 태평소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대목에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주고 받고 밀고 당기고 두 예술가의 재능이 제대로 발휘된 무대다. 찰떡 궁합이란 이런 것이다. 한 번 들으면 두세 번을 반복해서 듣는다.

두줄 音 2021.10.15

이름이 법이 될 때 - 정혜진

눈에 쏙 들어오는 책 제목이다. 제목만 읽어도 일상의 소금 역할을 할 것 같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이런 책을 들출 때는 먼저 저자를 꼼꼼히 살핀다. 저자 정혜진은 15년 간의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로스쿨에 입학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국선변호사로도 활동했다. 그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 를 읽으면 낮을 곳을 향한 저자의 정체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정혜진은 뒤늦게 법률을 공부해 자기 길을 걷고 있는 여성 변호사다. 이름이 법이 된 경우로 대표적인 게 김영란법이다. 속칭 부패방지법으로 청탁금지법이다. 이 좋은 법에도 피해자는 있다. 그동안 부정부패로 연명하며 부를 축적해 왔던 기득권층들은 이 법의 최대 피해자다. 50년 전에 있지만 있으나마나 했던 근로기준법도 전태일이 스스로 귀한..

네줄 冊 2021.10.15

술과 잠 - 진창윤

술과 잠 - 진창윤 젖어들면 내 힘만으론 일어서기 어렵다 한 번쯤 나를 잊고 너를 잊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야 빛난다 옷에 침을 흘리고도 단추가 풀어져서 웃을 수 있다 너와 나는 한 방에 마주 앉아 잘 다린 셔츠의 주름이 구겨져도 개의치 않고 꿈속인 듯 안갯속인 듯 흐릿한 눈빛으로 한세상 건넌다 계단을 오르던 무릎이 촛농처럼 흘러내려 켜켜이 쌓이면 서로의 손바닥을 겹쳐보기도 한다 너무 오래 잠겨 있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는, 잊지 못하는 걸 잊어야 하는 게 인생 어둠이 내리는 방 눈꺼풀 닫고 검은 눈을 뜬다 검은 새는 밤하늘을 날기 위해 검은 것인가 봄날인데도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방황하는 흰 이빨들이 웃는다 *시집/ 달 칼라 현상소/ 여우난골 이불 - 진창윤 어둠 속으로 발을 밀어 넣는다 ..

한줄 詩 2021.10.12

비밀의 기분 - 고태관

비밀의 기분 - 고태관 만나기로 한 광장으로 갑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위험해요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안전하니까요 우리는자꾸 어디로 가려고 해요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눈치챘다는 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 고개를 돌리다가 얼핏 봤어도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녜요 떠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묘지나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오늘의 운세를 읽어 두세요 방향을 바꿔 북상하는 태풍이나 건물로 돌진하는 덤프트럭을 미리 겁내지 않게요 횡단보도로 건너면 되는데 가로수는 2차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입니다 그림자가 겹쳐집니다 고양이는 사람의 걸음만 보고 밥을 주는지 걷어차는지 알아요 긴 수염을 밟기도 하는데 멈추거나 넘어져요 갈고닦은 습관은 본능으로 진화합니다 아이를 앞세우고 당신이 걸어..

한줄 詩 2021.10.12

나비가면 - 박지웅 시집

요즘 박지웅의 네 번째 시집인 을 부지런히 읽고 있다. 몰입이 잘 안 되는 몇 편을 빼고는 여전히 그의 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게 한다. 아마도 2007년 첫 시집 이후 4년이나 5년 터울인 올림픽 주기로 시집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이든 월드컵 축구든 4년이 기다림과 즐기는 감동이 가장 적당하다. 시집 내는 것도 이 터울인 4년 주기가 가장 무난하다. 그래서일까. 박지웅의 네 번째 시집도 알맞게 숙성된 시들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동안 내가 읽은 그의 시집을 나열해 본다. , , , 이다. 철학적이고 염세적이고 몽환적이고 우화적이고,, 또 뭐 있나? 어쨌든 지금까지 그의 시를 읽어 본 바로 검은 우울과 나비로 집약할 수 있겠다. 시중에 제목만 그럴 듯하면서 공감이 안 가는 해독 불능의 암호로 ..

네줄 冊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