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746

농담 - 이문재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시집, 제국호텔, 문학동네 기찻길은 기차보다 길어야 한다 - 이문재 라일락꽃 피고, 아, 하복 윗주머니 파란 잉크 자국 생각 오래된 여자상고가 있던 곳, 담장을 끼고 봄의 왼쪽으로 돌아나오는데 물끄러미, 내가 앞서가는 내 잔등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 생각은 生覺일 때가 있어서 생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하여, 나를 따라오지 않고 서 있는 나를 부르는 것인데 저기, 열일곱 라일락 ..

한줄 詩 2017.02.02

Tomaso Albinoni - Adagio in G Minor

오랜 기간 들었지만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곡이다. 천성이 축 처지고 어두운 선율을 좋아해서 더 그렇다. 이 곡은 어두운 듯하면서 한편 봄바람처럼 감미로운 느낌도 있다. 토마소 알비노니(1671-1750)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작곡가지만 이 곡 외에는 알려진 작품이 거의 없다. 베네치아 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비발디와 알비노니를 꼽는데 비발디가 많은 명곡을 남긴 반면 알비노니는 미스테리다. 심지어 어떻게 음악 교육을 받았고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어쨌든 이 곡 하나 만으로 그는 충분히 유명 작곡가다. 나 같은 얼치기 애호가도 감동할 수 있으니까.

두줄 音 2017.01.30

이런 게 필요한 아침 - 임곤택

이런 게 필요한 아침 - 임곤택 잡지의 표지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 드러난 그런 배경이 좋겠다 창에 은박지를 붙여놓았다 새들어온 빛이 환등기같이 담배연기를 비춘다 좀 눌은 벽지 위가 좋겠다 한 아저씨가 다가와 바지를 쓱 내리는 변두리 극장쯤이 좋겠다 게슴츠레한 노래가 좋겠다 책보다는 거울이, 일자로 다듬은 콧수염이 좋겠다 담배를 또 문다 새벽까지 아이들에게 글 잘 쓰는 비급을 전수하고 소주 딱 한 병 마시고 온 아침 신문은 오지 않는 게 좋겠다 빨간 코의 유쾌한 광대가 문 두드리면 좋겠다 당신의 나라가 흑백으로 치직거리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고 *시집, 지상의 하루, 문예중앙 이런 안부를 묻다 - 임곤택 머리가 맑다 작은 소리가 잘 들린다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우스웠는데 매년 봄 가야 하는 병..

한줄 詩 2017.01.30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 목수정

재불 작가 목수정 선생의 산문집이다. 한국의 문화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권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데 홍세화 선생 이후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그곳에서 세상 보는 관점을 말하는 사람 중에 목수정 만한 작가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가 쓴 책은 대부분 읽었다. 이라는 도발적인 책 이후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의 글에 중독이 되었나 보다. 작정하고 읽은 건 아닌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읽다보니 이리 되었다. 그이 글은 정체성이 확실해서 좋다. 빙빙 돌리지 않고 자기 관점을 확실히 말한다. 정치인이었다면 다쳐도 여러 번 다쳤을 것이다. 청치인이든 작가든 말은 면피할 구멍이 있지만 글은 한번 뱉으면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활자로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목수정은 자유인이어서 가능하다. 스스로도 자유인을 자처하지만 ..

네줄 冊 2017.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