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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이광수, 최희철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다소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사진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나의 사진을 놓고 사진을 찍은 사람의 해설 뒤에 시인이 나름의 시각으로 그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곶감 빼먹듯 사진과 바로 옆에 차례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해설을 읽으면 된다. 거기다 독자가 자신이 사진을 본 느낌까지 보태면 삼박자의 완성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이 크고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을 아니다. 인도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스냅 사진은 꽤나 우울하다. 사진 책 하면 대부분 판형이 크고 무겁고 화려하고 비싸다. 거기다 철학 책 하면 너무 고리타분하거나 어렵다. 이 책을 철학적인 사진 해설집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에 다 해당된다. 그러나 책은 사진..

네줄 冊 2017.04.02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전부인 - 박용하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전부인 - 박용하 그런 것들을 사랑하리 서울에서의 삶은 환상도, 장밋빛 희망도, 모욕도, 환멸도 개똥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닌 것들을 사랑하리..... 이미 한 살 때 어쩌면 더 오래 된 슬픔의 옛날인 내 추억의 폭풍우와 바다인 감히 백 살 때 나는 인생이 빛도 어둠도, 눈물겨운 휴가도 정말이지 눈물겹게 말린 김밥도 소풍가는 도시락도, 너도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전부인 삶의 이슬임을 알았다 아닌 것들을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리..... 서울에서의 삶은 나무도, 나무를 생각하지 않는 자동차도 굴러가는 쓰레기도, 남창도, 탁자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닌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너무도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의 햇살과 나이의 자갈밭에서..... *시집,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한줄 詩 2017.03.30

만경강 트로소 - 서규정

만경강 트로소 - 서규정 내세는 있는가, 대체 어느 서쪽일까 온갖 트집을 잡듯이 물결은 굽이치며 출렁이고 굵은 모래가 은하처럼 빛나던 그 강가 장날 팔려나온 닭, 싸움시키다 만나 발음도 시원치 않게 구구절절 외워온 팝송 부르며 볏짚가리 속에서 몇 밤 같이 새운 우리 사건쯤이야, 연극 제목으로 골라 따로 쓸 건 없어도 마른수수깡 씹듯 복수의 이빨은 갈았겠지 시골구석에서 흐느적거리며 살 순 없어 배우가 되겠다고 나서던 등 뒤에서 연극이나 시, 하필이면 밥도 안 되는 것만 찾아 술은 먹는다 앞 강 모래 파, 벽돌 찍어 팔면 그럭저럭 밥은 먹는다 남잔 벼락을 잘 만나야 목발도 날개가 되는 거야 생활을 해야지, 왜 서커스를 찾아 가 놔라 팔 부러진다 역에 나와 팔을 붙들던 화장기 없는 살림꾼 하나 가물거리던 풍경..

한줄 詩 2017.03.30

시간의 손 안에서 - 전대호

시간의 손 안에서 - 전대호 오직 시간만이 우릴 지배하고 있을 때 하여, 우리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심지어 생사조차도 확인할 수 없을 때, 벗이여 잘 보자 시간의 손이 작용하는 방식을, 시간은 모든 산 것들을 갈라 놓고 모든 죽은 것들을 모은다 우리 지금 헤어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린 아직 살아 있다 두려움 없이 쪼개지자 우리 산화하지 않은 단면을 보여 주자 보여 주고 서로 용기를 얻자 오직 시간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오직 산 것들만이 갈라진다 가라! 울지 말고. *시집, 가끔 중세를 꿈꾼다, 민음사 별똥별 - 전대호 별똥별이 천구에 한 십오 도쯤 원호를 긋고 사라진다 이렇게 멀리 있어 내 귀와 눈은 느끼지 못했지만 아주 높은 곳에서는 장엄했으리라, 공기를 찢는 그의 속도가 쏟아 놓는 소리 ..

한줄 詩 2017.03.30

삼월의 눈보라 - 박승민

삼월의 눈보라 - 박승민 저 때 아닌 것들 영원하지도 않은 것들 온 산을 뿌옇게 추상화로 춤추네 허공에서 봉두난발로 내려와 지상의 외로운 발바닥들 온몸으로 덮네 나는 말짱한데 너는 왜 아프냐고 말도 못하는 저것 듣지도 못하는 저 허망이 자꾸 말을 거네 목숨은 허공중에 살다 순식간에 가는 거라고 천지간 분별을 지우고 풍경을 지우고 생과 사를 비웃으며 마음대로 흔들리다 가네 몸이 곧 유언장이었네 가고 싶네 처자식 버리고 막춤 추는 저 눈보라 속으로 *시집,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사 하류(下流)의 시 - 박승민 다가오는 것은 하류의 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나를 견뎌준 건 먼 과거의 어느 시간쯤에서 만난 한 순간 순간의 화인(火印) 이후는 물에 갇힌 수몰주민의 생이었고 때로는 이미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

한줄 詩 2017.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