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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떨어지다 - 류흔

사내, 떨어지다 - 류흔 바닥이 그의 얼굴을 문질렀을 때 그는 이미 지상을 떠나고 있었다 납작 엎드린 그의 그림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날개 없는 것들의 최후는 이렇게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확 쓸면 그만인 바닥에서 닦아내고 지워진다 이제 편한가, 사내여 마음 한 장 얻어갔는가 사내여 남겨논 구두 한 켤레로 맞바꾼 것이 1초, 2초, 또는 3초 동안의 바람과 경관, 혹 느꼈을지 모를 자유였다니! 그것으로 만족하는가 사내여, 여기 엎질러진 이마와 주름과 울음의 얼룩이 한 동이 물로 간단히 씻겨질 때 자네가 공중에 펼친 묘기의 수고로움과 때로, 진지하게 보이는 느닷없는 활강을 날아가지 않는 날개를 사람들은 금새 지워버릴 것이다 *시집, 꽃의 배후, 바보새 없이 산다 - 류흔 없이 산다. 없이 사는..

한줄 詩 2017.01.07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 정수년 해금

# 스마트폰 시대가 많은 편리함을 주지만 정서적으로는 메말랐다. 빠르고 세련되고 새것 만이 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훗날 이런 곡은 박물관에서나 듣게 될 것이다. 경쾌하고 빠른 곡이 유행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나는 느리고 축 쳐지는 이런 곡을 자주 듣는다. 나 또한 사는 게 거칠고 투박해서 정서가 몇 년 묵은 북어처럼 뻣뻣하다. 영혼의 순도를 눈물로 잴 수는 없겠으나 울어 본 적이 까마득하다. 이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바짝 마른 영혼을 정화시킨다. 진눈깨비 날리는 길을 오래 걷고 싶다. 천성이다.

두줄 音 2017.01.06

눈발이 날리는 세모에 - 신경림

눈발이 날리는 세모에 - 신경림 하나는 십수년 징역을 살고 하나는 그가 세상에 두고 간 아내와 아내와 딸을 거두고 먹이고 가르치고 오랜 세월 하나가 창살 안에서 달을 보며 주먹을 쥔 그 숱한 세월 하나는 거리에서 비와 바람에 맞서 땅도 넓히고 집도 올리고 그가 두고 간 아내와 딸과 더불어 이제 세상에 나와 하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목이 쉬어 거리를 누비고 뜻없이 산 세월이 원통해 하나는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다가도 눈발이 날리는 세모에 마침내 마주앉아 그들 술잔을 부딪친다 자네 있어 나 든든하다면서 자네 있어 나 자랑스럽다면서 이 땅에 그들 친구로 태어나서 바람과 눈비 속에 형제로 태어나서 눈발 날리는 세모에 *시집, 낙타, 창비 어쩌다 꿈에 보는 - 신경림 ​ ​ ​복사꽃이 피어 있었을 거야. ..

한줄 詩 2017.01.04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성선경 시집

이 시집을 읽고나서야 성선경 시인을 내가 좋아하는 시인 명단에 올린다. 그동안 여러 시집을 냈고 나도 서른 살의 박봉씨를 시작으로 몇 권의 시집을 읽었다. 이전에 읽었던 시집에서는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시가 별로 없었다. 그가 서정성 짙은 심오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만을 놓고 보면 일단 시가 쉽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한다. 이 말은 시가 가볍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벼운 시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말을 쉽게 해야 소통이 되듯 그의 시가 그렇다. 시집을 낸 곳도 부산의 생소한 출판사다. 작가들이 메이저 출판사를 선호하기에 라는 출판사는 처음 듣는다. 제목도 아주 잘 지었다. 아마도 시인의 현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다. 성선경 시인은..

네줄 冊 2016.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