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이광수, 최희철

마루안 2017. 4. 2. 23:19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다소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사진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나의 사진을 놓고 사진을 찍은 사람의 해설 뒤에 시인이 나름의 시각으로 그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곶감 빼먹듯 사진과 바로 옆에 차례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해설을 읽으면 된다.

거기다 독자가 자신이 사진을 본 느낌까지 보태면 삼박자의 완성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이 크고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을 아니다. 인도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스냅 사진은 꽤나 우울하다.

사진 책 하면 대부분 판형이 크고 무겁고 화려하고 비싸다. 거기다 철학 책 하면 너무 고리타분하거나 어렵다. 이 책을 철학적인 사진 해설집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에 다 해당된다. 그러나 책은 사진을 아주 시적이면서 인문학적 접근을 쉽게 만들어 준다.

사진가가 본 세상 일부다. <전혀 아름다울 것 없는 이상한 조합이 내 눈을 끌었다. 낯선 구조, 이질적인 색 조화, 생뚱 맞지만 따뜻한 느낌이다. 이것이 부조화이자 추함의 아름다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 이질적 조화가 주는 추(醜)가 미(美)로 될 수 있다면, 색다른 긴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순간의 느낌이 들자 바로 셔터를 눌렀다.

삶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온갖 것이 다 섞인 그 잡어(雜魚)의 세계, 그것이 곧 보통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야말로 우아하지도 못하고 저질스러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 냄새 나는 세상과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나 삶이나 항상 더 잘 찍고 더 좋은 것이 꼭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 아니다.>

거기에 시인이 읽은 풍경은 이런 글을 보탠다. <세상에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것 같은 존재로 사는 것이 너무 패배주의 같아서 위험해 보일지 모르나 그게 잡어적(雜魚的) 삶이 아닐까.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와 필요 없는 존재는 어쩌면 같은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필요라고 하는 필요성의 이데올로기에 꽁꽁 묶여 있다.

그게 마치 본질주의의 양극단,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만 한다는 교본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에서 규정을 거부하는 것 같은 이미지들을 본다. 그렇게 풍경의 기억들은 스쳐가는 것 아닐까. 삶과 세계가 이질적인 것처럼 이질적이고 싶어서 이질적인 게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이질적인 것들 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질적인 자신이 보인다.>

인도사를 공부한 역사학자 이광수(나는 꽹과리 치는 분인 줄 알았다) 선생은 자기가 찍은 사진에 간결하면서도 울림 있는 해설을 했다. 항해사로 배도 탔고 양계장을 하기도 했던 시인 최희철은 다른 시각으로 사진을 바라봤다. 이질적인 시각에서 사진을 보지만 삶을 깊이 사랑하는 시선은 같은 방향이다.

사진 찍는 인문학자 이광수와 철학하는 시인 최희철의 만남은 찰떡 조합이다. 이 책은 제목으로 보나 관심 분야로 보나 많이 팔릴 책은 아니다. 그러나 반짝 유행하다 사라질 책은 아니다. 유통기한이 긴 오래 팔릴 책이다. 모처럼 잔잔하면서 울림을 준 좋은 책 하나 읽었다. 좋은 책은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라 향기가 오래 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