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전부인 - 박용하
그런 것들을 사랑하리
서울에서의 삶은
환상도, 장밋빛 희망도, 모욕도, 환멸도
개똥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닌 것들을 사랑하리.....
이미 한 살 때
어쩌면 더 오래 된 슬픔의 옛날인
내 추억의 폭풍우와 바다인
감히 백 살 때
나는 인생이 빛도 어둠도, 눈물겨운 휴가도
정말이지 눈물겹게 말린 김밥도
소풍가는 도시락도, 너도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전부인
삶의 이슬임을 알았다
아닌 것들을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리.....
서울에서의 삶은 나무도, 나무를 생각하지 않는 자동차도
굴러가는 쓰레기도, 남창도, 탁자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닌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너무도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의 햇살과 나이의 자갈밭에서.....
*시집,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문학과지성
육체는 가난하다 - 박용하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야
가령 새털구름으로 이루어진 집의 육체 같은 것 말야
모든 삶의 영광과 환희는 너무도 가벼우므로
휘발유처럼 쉽게 뭉쳐져 비로 사라진다
결국, 내 육체는
무거운 생의 나비를 발견하는 일에 다름아니니
어찌하랴,
내 마음의 푸르른 관심들 속엔
공허한 진눈깨비들의 가벼운 유영으로 가득차버렸으니
한없이 달콤한 가난의 내 사랑,
나는 천국의 현관이 절벽과 맞닿아 있음을 안다
이 집의 내부는 너무 황폐해버렸어
새와 나무와 여자는 이제 지구를 날지 않아
오 가여운 내 희망, 희망의 인공 도시들
그러나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야
죽음은 왜 그리 질기기만 한지
만만한 죽음은 이 지상에 왜 그리 없기만 한지
*自序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와 모험에 모든 적금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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