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짜고무신 - 서상만 대짜고무신 - 서상만 "대짜고무신 한번 보입시더!" 내 나이보다 서너 살을 앞서 부르던 어머니 장날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내 발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발가락이 헛도는 대자고무신을 신고 터덜터덜 산길을 걸었다 고무줄로 발등을 칭칭 조여도 발보다 앞서가는 문수에 십리 길 오리.. 한줄 詩 2018.02.05
무작정 반하다 - 조항록 무작정 반하다 - 조항록 단지 몸짓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지 마음을 빼앗기면 몸도 쇠약해져 그렇게 병들기도 하지 마음에만 마음을 바치는 게 아니라 몸도 아닌 한낱 몸짓 때문에 종일 물구나무 서기도 함을 그깟 몸짓에 갈팡질팡하며 견디는 게 객혈이기도 함을 굳이 흔들지 않아도 바람의 몸짓에 돌연 고백하는 종처럼 고요한 심경에 불쑥 쏟아져내리는 종소리처럼 *시집, 지나가나 슬픔, 천년의시작 잠시 쉬어가는 평화 - 조항록 의리에 살고 죽는 비디오 한국판 대부가 끝나고 조용필이 막간 가수다 음악이란 무릇 은혜로운 것 부산항은 쓰러진 건달들에게 손짓하고 나 역시 돌아갈 집 있음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함도 나름 짓누르지 못하는 신작로가 내다보이는 소읍의 다방 보리차가 끓고 있는 주전자에 설령 집어넣어도 흐들갑스럽.. 한줄 詩 2018.02.05
나의 너털웃음에 대한 고백 - 임동확 나의 너털웃음에 대한 고백 - 임동확 애써 지키고 가꾸어온 가정이, 지지해온 한 세계가 뒤죽박죽되고 마는 순간이다 지금껏 날 지탱케 한 사랑의 등뼈, 내가 주인이라고 믿었던 몸의 발작이다 아니, 그토록 자신만만해하던 신념과 양심에 대한 반란 또는 모멸, 온갖 고정관념으로 배 불.. 한줄 詩 2018.02.05
입춘 - 권오표 입춘 - 권오표 보듬어 사랑할 일들이 하많아 그대 눈길 머무는 가장자리쯤 그냥 다소곳해도 괜찮을 굴뚝새의 부리 끝에 겨우내 대롱대롱 꿈꾸던 추억의 씨알 한 톨 시누대 숲 싸락눈 내리는 후미진 산모퉁이 물그림자 헤살져 흔들린다고 어디 다 사랑이랴 이제 황홀한 설레임으로 나직이.. 한줄 詩 2018.02.05
마부의 아들 - 정원도 마부의 아들 3 - 정원도 한여름 진한 담뱃내에 땀내 절은 아버지가 밤이슬 털며 사과궤짝 가득 실은 마차를 끌고 돌아왔다 삐걱대는 마차를 늦둥이 아들 옆에 태우고 채찍질하던 길 쉴 새 없이 달라붙는 파리 쫓기에 바쁘던 긴 말총 어린 뺨 따갑게 후려쳤다 새하얀 새끼 보에 싸인 채 쏟.. 한줄 詩 2018.02.04
마부 - 정원도 시집 시집을 읽으면서 한 시대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드물다. 자전적인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마치 소설처럼 느꼈다. 앞 부분 몇 편을 읽다 왜 시집 제목이 마부인지를 알고부터 더욱 흥미로웠다. 시로 읽는 자서전이라 해도 되겠다. 정원도 시인은 올해 한국 나이로 60세, 맨 뒷편에 실린 시인의 산문을 읽고 시인의 생애를 알았다. 다시 찬찬히 첫장부터 시를 읽었다. 무슨 심오한 내용이나 무릎을 칠 만한 기막힌 문장은 없으나 술술 읽히는 시가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온갖 공상과 문학 이론을 끌어다가 뜬구름 잡는 시를 쓰는 시인들과는 달랐다. 노동이 뭔지도 모르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인생을 논하는 시를 빨아주는 평론가들도 뜬구름을 잡기는 매한가지다. 대체 누구을 위한 시며 평론.. 네줄 冊 2018.02.04
밤 - 김유석 밤 - 김유석 -기차 갈 수 없는 곳을 가보려 함이 아니다. 가차이 두고도 한 번 들러주지 못했던 곳, 이후론 영 찾아가지 못하게 될 줄 모르는 이제는 어쩜 기차가 서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곳으로 밤차를 탄다. 겨울, 마음이 온통 새허여질 때까지 기다려 떠나는 기차에도 미처 태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옆자리는 비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실려가는 듯한 막연함이 성에 낀 차창에 긋는 어렴풋한 불빛 속으로 함께 데려가 달라고 눈송이처럼 뛰어드는 것들의 철없는 객기를 달래며 일부러 먼 길을 도는 세월은 아직도 남은 꿈이 있다는 것일까 지나친 후에야 환히 비춰지는 길의 부단한 이음새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문득 아름다워 보인다. 하객이 없어도 질주하던 힘을 풀어놓고 가는 몇 몇 역이름을 외우면 .. 한줄 詩 2018.02.04
나를 묻고, 또 엿보는 나를 묻고 - 김병심 나를 묻고, 또 엿보는 나를 묻고 - 김병심 수목장을 했다 웃는 얼굴 뒤로 감추면 감쪽같다 왠일인지 하룻밤만 자면 둥근 봉분이 나무를 등에 이고 있다 욕지거리를 묻을 땅이 더 이상 없다 나무들이 마다했으나 뜨겁게 달군 삽질 소리에 숲은 부르르 떨었을 뿐이다 누군가 엿본 게 틀림없.. 한줄 詩 2018.02.04
한 끼의 식사 - 김선 한 끼의 식사 - 김선 눈썹을 초승달만큼 그리다 말고 출근을 서두른다 밤새 술병 든 사연들이 아직 허공을 맴도든 가리봉역 광장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비둘기 두 마리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허기라는 이름으로 부끄러움을 감춘다 누군가 버려놓은 나쁜 습관들 더벅머리처럼 늘어져.. 한줄 詩 2018.02.04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 강세환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 강세환 겨울비 오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았다 한 번도 울리지 않는 내 휴대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소파처럼 식탁과 마주 앉은 빈 의자처럼 혼기 놓친 여자 같은 계간지 표지처럼 뒷마당 대추나무 끝에 글썽글썽 맺혀 있던 빗방울처럼 옛.. 한줄 詩 2018.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