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경계 - 강영환 어둠의 경계 - 강영환 문을 밀치고 나서니 다시 어둠이다 앞쪽 어둠과 뒤쪽 어둠 사이에 누구나 다 아는 경계가 남아있다 투명한 어둠이라도 같은 것이 아니다 더 진하거나 더 악랄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불투명하거나 계단은 가파르고 끝에 선 벼랑은 절로 너무 깊다 밖에 나선 내게 길.. 한줄 詩 2018.01.29
나를 만지다 - 박세현 나를 만지다 - 박세현 오랜만에 돌아와 내 빈 방을 바라본다 구겨진 삶이 누워 있다 마디 굵은 손끝에 만져지는 저 뒤틀린 생애 도둑의 발소리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다 빗방울 속으로 속으로 되도록 옹졸하게 숨고 싶다 오랜만에 돌아와 지친 숨결을 몰아쉬며 생활의 틈서리에서 서.. 한줄 詩 2018.01.28
달빛 속의 키스 - 박남원 달빛 속의 키스 - 박남원 흥건히 젖은 달빛 길을 걸어보았는가. 어둠과 달빛에 반씩 젖은 구름 한 떼가 먼 산발치에 아무도 몰래 내려앉는 것을 보았는가. 외롭다는 것은 사람 속에 별이 저문다는 것 저문 별을 찾아 산마루길 넘는다는 것. 누구나 낮은 자들의 눈물을 말하는 것은 쉬워도 누구나 낮은 자들과 함께 걷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아도 어둠이 와도 끝내 사랑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증오마저 쌓일 만큼 그대를 사랑하고 증오마저 넘어 마침내 달빛 길에 이른다면 진실로 너를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것이리. 온몸에 어둠에 젖은 달빛을 묻히고 이 세상이 다 가기 전에 네 속으로 내려앉아 너를 안고 영원토록 키스할 수 있으리. *시집, 캄캄한 지상, 문학과경계사 뜨거워지마 - 박남원 .. 한줄 詩 2018.01.28
이 밥통아, 하는 말 배삼룡이 선전하던 전자밥통이 있었다. 그때 기술은 전기밥솥은 아직 개발이 안 되었는지 밥통이 대세였다. 밥을 따뜻하게 보관하는 것은 당시에 경이로웠다. 늘 찬밥을 먹었다. 점심은 무조건 찬밥이다. 모내기철에 들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 외에는 점심에 더운밥 먹기가 힘들었다. 밭에 일하러 나갔다가 점심을 드시러온 어머니도 가마솥 안에 담아둔 밥으로 끼니를 떼웠다. 솥 안에 있었던지 완전 찬밥은 아니고 약간 미지근한 밥이라 해야겠다. 점심 도시락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양은 사각도시락을 겨울 난로 위에 얹어 놓은 풍경도 거기서 나왔다. 으이그 이 밥통아, 학교에서 선생님은 야단치기 전에 늘 이 소리를 멎저 했다. 밥만 축내는 이 멍청아,, 이런 뜻을 내포한 말이다. 이 밥통아라는 말 욕이어도 좋.. 열줄 哀 2018.01.28
건달의 회고록 - 유현아 건달의 회고록 - 유현아 무엇을 잃어버렸나 미루적거리며 그 골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무쇠팔 무쇠주먹이 건달의 골목들을 쓸고간다 한때 주먹 하나로 그 골목을 평정했더라는데 뽐내기 위해 추억 따위 바닥에 흘리고 다녔다는데 용맹스럽던 뱀의 무늬는 각질이 되어 있고 옛애인은 .. 한줄 詩 2018.01.27
악연 - 유영금 악연 - 유영금 염통이 터진 사랑아 등기를 말소 한다 기름통에 처박힌 서른아홉, 쑥대밭을 굴러 고물상을 지나 병든 걸인의 의자가 된다 걸인이 버린 담배불에 닿아 재가 된다 하루 백 마일씩 도망치는 빌어먹을 사랑아, 염병처럼 떠나거라 *시집, 봄날 불지르다, 문학세계사 손목에 관한,.. 한줄 詩 2018.01.27
자화상 - 김추인 자화상 - 김추인 늘 저기가 문제다 멀리를 욕심하고 가까이를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다 먼 데 바람에도 쓸쓸히 그늘지는 독단의 섬이다 마주 오는 시선을 피한다 지그시 스미는 온기며 끈끈한 체취 의식 바깥으로 밀어내며 팔 뻗어도 닿지 않는 먼 풍광을 쫓는다 탈주를 꿈꾸는 자 꿈속도 .. 한줄 詩 2018.01.27
사내와 비둘기와 참새 - 김장호 사내와 비둘기와 참새 - 김장호 그곳에 가면, 속도와 경쟁을 벌이는 시간의 울타리가 있다 그곳에 가면, 울 밖으로 밀려나 시간을 탁발하는 사내가 있다 어찌 익은 것만 떨어지랴 졸지에 세상 밖으로 추락한 사내 광장 바닥에 주저앉아 강소주 마시며 망연히 바라보는 길 건너 세상 너무 .. 한줄 詩 2018.01.26
어떤 경우 - 이문재 어떤 경우 - 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 한줄 詩 2018.01.26
거룩한 환생 - 나호열 거룩한 환생 - 나호열 오래되었다 사랑도 없이 먹먹한 세월이 설렘을 곰삭혔을까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역겨울 때 액자 안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시선이 허공을 떠도는 먼지 같을 때 슬며시 다가오는 기억 같은 것 훔치고 닦아 내면서 진저리치는 까닭에 언제나 마지막 뒷처리.. 한줄 詩 2018.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