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의 너털웃음에 대한 고백 - 임동확

마루안 2018. 2. 5. 16:35



나의 너털웃음에 대한 고백 - 임동확



애써 지키고 가꾸어온 가정이,
지지해온 한 세계가 뒤죽박죽되고 마는 순간이다
지금껏 날 지탱케 한 사랑의 등뼈,
내가 주인이라고 믿었던 몸의 발작이다
아니, 그토록 자신만만해하던
신념과 양심에 대한 반란 또는 모멸,
온갖 고정관념으로 배 불룩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혹은 인공기와 적화통일에 대한 협잡이다
너무도 당연시해온 딸들에 대한 훈계와
늙은 아내와의 의무적인 잠자리,
그밖에 진지한 척 혹은 미친 척 살아온
모든 날들의 턱밑에 들이대며
다시 세우는 비수다, 쓴 울음이다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이 한꺼번에 열리면서
제멋대로 꿈처럼 목구멍을 타고 기어올라
어이없이 솟아오르는 나의 이 끝없는 웃음은,
느닷없이 배꼽 깊은 곳으로부터
가끔씩 토악질하듯 밀려나오는, 또는
아주 우연히 전혀 엉뚱한 곳으로부터
마구 터져 나오는 나의 너털웃음은.



*시집,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신생








독거인(獨居人) - 임동확



그날 새벽 여섯 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황망히 119 구급차에 오르려다 미처 잠그지 못하고 내려온 출입문 열쇠 때문에 아픈 배를 움켜쥔 채 이 층 계단을 겨우 기어 올라가고 있었을 때
누군가엔 축복이고 또 누군가엔 재앙이었을지도 모를 눈보라가 쏟아지고 있었다니!
결코 기억하지 못하는 단절의 시간 속으로 다급히 사이렌을 울리며 한강대교를 건너 응급실로 달려가고 있었을 때
그제서야 온전히 제 몫인 극한의 어둠과 결단의 순간들만 앞다투어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러나 한 사내가 병상 네 귀퉁이에 손발이 묶인 채나마 홀로 깨어났을 때
정말 그게 가능하기나 하냐는 듯 겨울 창문 안으로 아침 해가 그리도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고 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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