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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 - 양정철

나오자 마자 바로 사서 읽은 책이다. 타고난 천성이 게을러 대부분의 신간을 몇 달 지나서야 읽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읽으려고 찜해둔 책들이 워낙 많이 밀린데다 책만 붙잡고 있을 수 없는 일상 때문이다. 독서는 읽은 이유보다 못 읽은 이유가 더 절실한 법, 그것은 나에게도 어김없이 해당된다. 양정철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다. 노무현 때부터 측근으로 일을 했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문재인 비서실장과 김경수 비서관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어쨌거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사무친 관심 때문에 이 책이 나오자 바로 책방으로 달려갔다. 동네 책방이어선가 내가 읽은 책은 4쇄다. 1주일 만에 4쇄라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모양이다. 베스트셀러를 멀리하는 나의 취향이 이 책은 ..

네줄 冊 2018.02.07

푸른 뱀은 새가 되다 - 홍성식

푸른 뱀은 새가 되다 - 홍성식 아버지에게서 맡은 건 바람과 소주의 냄새였다 밤마다 이어지는 악몽 차가운 푸른 뱀은 여전히 아버지 어깨에 또아리 틀고 칠흑의 숲길을 달린다 놀라운 그 사건 이후 형형하던 아버지의 눈빛은 흐려지고 벼랑 근처를 배회하는 그림자가 마을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다 아주 가깝거나 요윈히 먼 문신(文身)의 아버지 밀알 하나도 숨기려 드는 궁핍의 손길들 모래 섞인 바람이 불고 새가 없는 동네의 햇볕 아래 아버지는 떨며 앉았다 여윈 어깨 위 푸른 뱀을 애써 감춘 채 보고 싶다 걸핏하면 윗통을 벗던 아버지의 젊은 몸 투박한 근육 위 꿈틀대던 생명 이미 오래전 날아가 화석의 기억으로만 남은 허물벗은 새 푸른 뱀 *시집, 아버지꽃, 화남 눈물이 아니라면 - 홍성식 유혹의 노래는 묘하게도 우울한..

한줄 詩 2018.02.07

저 능소화 마저 지기 전에 - 김일태

저 능소화 마저 지기 전에 - 김일태 -영월의 일기. 5 도계 너른 들판에 보리가 누렇게 파도치는 모양 보셨나요? 나도 한때 가슴에 삼복더위 일었던 적 있었지요. 내 육신 붉은 적을 버리고 나무그늘로도 식힐 수 없는 불덩이 같은 나를 팔뚝 굵은 사내에게 던지고 싶었던 적 주남의 너른 품 같은 사내 가슴에 오롯이 빠지고 싶었던 적 있었지요. 이 불같은 사랑의 가지 끝에 씨앗 하나 맺고 싶었던 적 있었지요. 열매를 기약할 수 없는 꽃이었지만요. *시집, 오동나무에 열린 새벽달, 불휘미디어 외로움도 약 삼아 - 김일태 -영월의 일기. 18 환갑을 넘기고 기억이 희끄무레해지면서 머릿속에 찍듯이 생각해놓은 것도 그냥 잊고 지나게 되네요. 살아있다는 것을 이리 깜빡깜빡 하는 만큼 서럽던 시절 기억도 쉬이 잊혔으면 ..

한줄 詩 2018.02.05

흔적에 대한 보고서 - 이철경

흔적에 대한 보고서 - 이철경 유년의 한쪽 모퉁이 흔적인 양 X- Ray에 선명하게 찍힌 폐렴의 상흔이 깊은숨을 헐떡인다 짧은 봄 햇살 아래 새끼 고양이처럼 처마 밑에 앉아 졸고 있던 아이는 또래의 하굣길을 바라본다 약으로 허기를 때우는 점심나절 담장 아래서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다 파란 하늘이 갑자기 캄캄한 암흑의 소용돌이로 아찔하던, 그 찰나의 빈혈은 차라리 희열이다 검은 터널의 겨울이 가고 가뭄에 허덕이던 어지럼증처럼 내 잠에 비가 내리면 세상은 그나마 이스트가 첨가된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짧았던 계절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몸은 끝내 긴 밤의 뒤척임처럼 똬리를 틀었지, 새벽까지 멈추지 않던 기침과 눈알이 빠질 듯, 뼈 마디마디 풀리듯 내 깊은 불면의 밤은 납작하게 뼈가 굳어버린 꿈속을 표..

한줄 詩 2018.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