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746

과로 노인 -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

와 같이 읽은 책이다. 둘 중에 어떤 것으로 감상문을 쓸까 하다 으로 결정했다. 저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책일수록 저자가 참 중요한데 저자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는 1982년 생으로 일본의 젊은 사회운동가다. 실제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활동하며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세밀하게 고발하고 있다. 하류 노인에서 지적했던 염려가 과로 노인까지 이어진다.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좋은 책이다. 늙음과 빈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어떤 경제 이론도 이 사태를 해결 해주지 못한다. 운좋게 부동산이라도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임대 수입이 따박따박 나오는 경우라면 모를까 많은 사람들이 늙음과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일할 수 있을까? 퇴직 후에는 어떤 삶을 살게 될..

네줄 冊 2018.02.04

사막에 들다 - 이은심

사막에 들다 - 이은심 나를 쪼개고 쪼개면 한 알 쓰라린 모래에 닿으리 서둘러 내 안에 옮겨 심은 선인장 어린 싹 하나 일생의 죄가 무성해지려고 나는 자꾸만 물이 켜리 다시 오마 한 적 없는 이별을 재빨리 거쳐 고비나 사하라에 이를 때 한 다발 눈물은 왜 뭉쳐지지 않는가 꼿꼿이 태양을 받치고 선 나는 누구인가 진실로 우리는 서로 얼마나 먼가 그 물음을 굴리고 굴리어 가면 오직 둥근 가시관에 닿으리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한국문연 흐린 날 - 이은심 내 등뼈가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평생 업고 다닌 나를 내려놓겠다고 하면 어쩌나 바람이 불 때마다 흐느끼는 목관악기 구멍에 아픈 사람 하나, 한 번뿐인 생을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가출해버리면 어쩌나 나는 사랑을 무사히 횡재하고 싶어 떠돌던 백수 사교적인..

한줄 詩 2018.02.03

유년의 하늘 - 이상원

유년의 하늘 - 이상원 유년의 하늘을 새 한마리 가고 있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따금씩 벽돌담을 흔드는 아이들 소리거나 햇살이 튀는 솔바람소리라면 혹 모르겠지만 한번도 젖지 못한 내 목소리의 눈금으로 굳은 그 날개를 퍼득이게 하기는 어림없는 일이다. 정갈한 피 한방울로 거기까지 닿아서 굳은 목줄 풀리고 눈빛도 풀고 초록빛 뚝뚝 듣는 노래도 풀려서 한밤중 가문 뜨락에 비처럼 내리기는 천년 혹은 더 먼 후에도 어림없는 일이다. 유년의 하늘을 박제된 새 한마리 가고 있다. 눈 감으면 취중엔듯 지상의 동백잎이 한잎 반짝하고 빛난다. *시집, 지상의 한점 풀잎, 도서출판 경남 정월 대보름 - 이상원 내 어린 날 잘 타던 불꽃, 지금도 타던가. 마을 뒤 숲에서 왕대 찍어 상대 삼고 태깔 고운 짚단 위..

한줄 詩 2018.02.03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 손택수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 손택수 내게도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일정표에 정색을 하고 붉은색으로 표를 해놓은 일들 말고 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 곧 헝클러지고 말 텃밭일말정 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 장맛비 잠시 그친 뒤, 비가 오면 다시 어질러질 텐데 젖은 바닥에 붙어 잘 쓸리지도 않는 은행잎을 쓸어담느라 비질을 하는 일 치우고 나면 쌓이고, 치우고 나면 쌓이는 눈에 굽은 허리가 안쓰러워 어르신, 청소부에게 그냥 맡기세요 했더니 멀거니 쳐다보곤 하던 일을 마저 하던 그 고요한 눈빛처럼 별 뜻도 없이 고집스레, 내 눈엔 공연한 일들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상하지 않는가, 나는 이 쓸모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세..

한줄 詩 2018.02.03

늙은 약사를 만나고 왔다 - 정윤천

늙은 약사를 만나고 왔다 - 정윤천 공음에 다녀오는 길에 면소의 약국에 들렀다 파리똥이 낀 선반에서 먼지 쓴 파스 상자를 더듬던 약사의 손길이 한참이나 더디다 초점이 먼 눈빛 너머로 건너다보이던 그의 날들이 느리게 느리게 거스름돈을 헤아리고 있을 때 어느 후미진 마을의 지명과,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어깨를 겯고 저물어간다는 일이 때로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이웃의 잡일로 공음에 한번 다녀와야 하는 경우가 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길가엔 가을꽃들이 피었다 그것들은 바람 속으로 약사마냥 느린 몸짓을 흔들어주기도 하였는데 수중에 카메라를 지니고 있었다면 잠시 길을 멈추고 흑백사진을 한 장 찍어두고 싶었다 허름한 모퉁이 다방, 구석진 자리에 걸터앉아 흑백사진 속에는 인화되지..

한줄 詩 2018.02.02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 개의 눈과 마주쳤다 그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빵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간의 생을 더듬어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시집, 도요새 요리, 북..

한줄 詩 201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