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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 박남원

이별 연습 1 - 박남원 우리에게 이별이란 어느 날 지상의 모든 새들이 노래를 멈추고 바다가 안 보이는 저녁산 너머로 하루 해가 숨을 거두는 일과 같은 일이겠지만 꿈이 아닌 현실로서 우리의 운명의 길 위에 더 이상 그대와의 동반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라면 그 동안 우리의 가슴속에 깃들여 살던 사랑의 새를 날려보내자 헤어지더라도 부디 서로의 그리움은 미련 없이 단지 우리의 뒷길에 흔적으로만 남겨놓고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 같은 세월이 그래도 흘러 파도가 모래성을 지워버리듯 서로에게 남은 그리움의 자욱마저 어디론가 데리고 간 먼 훗날 우리들 운명의 기록표에 혹시 먼 발치에서나마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온다 해도 그때에도 서로를 손짓하며 부르지는 말고 가슴 아프게 울지도 말고 힌때 그대는 내 가..

한줄 詩 2018.03.18

썩지 않는 혀 - 김태완

썩지 않는 혀 - 김태완 이미 달콤함을 감지한 혀는 오랫동안 잔잔하게 맴도는 중독성 기억을 뿌리치지 않는다 그 달콤한 기억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다른 참을 수 없는 욕망의 되어 갈취와 폭력에 뒷걸음질치는 허약한 양심 죽을 때까지 썩지 않는 혀 입안에서 철저히 보호되는 조직적인 체계를 입술과 단단한 치아가 유지하고 있다 입술이 타들어가고 남은 치아가 다 빠질 때까지 살면 뭐하나 정말 간절한 것은 달콤한 욕망의 뿌리를 기억에서 지우는 일이다 ..... 헛말을 했더니 혀가 감긴다 젠장! 이게 뭐람 벌떼들이 독침을 품고 내 혀를 향해 몰려드는 *시집, 마른 풀잎의 뚝심, 오늘의문학사 입 안의 사막 - 김태완 갈증은 사막에서 건져 올려진 두레박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한 날마다 사는 일 사막에 가 본 일이 없는데 ..

한줄 詩 2018.03.17

저녁 풀내음 - 김창균

저녁 풀내음 - 김창균 옛 사람들은 풀이 썩으면 반딧불이 된다고 했던가 늦은 가을 저녁 들판에 누워 별들을 본다. 이승의 삶이 깊어져 저렇게 푸른 별로 뜬다는 것이 왠지 낯설기도 하여 자꾸 별들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까지 푸른빛으로 가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죽도록 푸르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들판의 풀들이 모두 썩어 가을 하늘 별로 뜨는 저녁 그 푸른 저녁 위에 나를 포게 놓으며 또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마른풀 냄새 맡으며 나도 그렇게 며칠 동안 푸르게 나이가 들었으면 그랬으면 하는. *시집,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세계사 그믐밤 - 김창균 삼십 촉 알전구가 어둠을 밀어 내는 저녁이다 이 시간에는 늘 그래 왔듯이 늙을 대로 늙어 주름이 살처럼 굳어 버린 얼굴..

한줄 詩 2018.03.16

그 풀밭 버섯 피워 내듯이 - 오두섭

그 풀밭 버섯 피워 내듯이 - 오두섭 한 살이라도 더 먹는 건 아무래도 섭섭한 일 저 어린 것들 무른 눈동자 촐망촐망 영글어야 하고 새벽 밝고 한낮 뜨거워 저녁이 오면 별들 하늘에서 광년으로 내달려와 그 눈 속에서 빛나야 하고 새끼 나무들 건방지듯 쑤욱쑤욱 자라나 성성한 잎 단단한 팔다리 근육 키워서 바람과 새와 달과 별들의 둥지 아름답게 지어야 할 일이고 내가 옹기마냥 구부러지며 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그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좀 쑥스러운 일이겠지만 병상에 누워 약효 키우는 투병의 숨결에 고목 가장 깊은 상처에서 움트는 재생의 씨앗에 열병에 몸 빼앗겨 황홀하게 빠져든 몽유병에 또 그것을 기다리는 모든 것들에게 깊이 찔러볼까, 시간의 주사바늘 무심히 다니는 그 길섶에 누워 있다가 반..

한줄 詩 2018.03.16

무명에 들다 - 허림

무명에 들다 - 허림 내 머리 위로 북두칠성이 떴다 어둠이 저 별을 내게 보내준 것이다 놀이 지고 저녁이 왔는데 그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사막처럼 메마름이나 목마름으로 내내 걸어야 했으리라 아니 저녁이나 밤이란 말 쓸 줄 모르고 내 눈을 감아 무명을 밝혀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나 여든의 엄마와 상추 뜯어 보리밥에 감자 으깨어 쌈을 먹고 평상에 누워 아득했던 꿈을 뒤적이다가 내 이마 위로 돋아나는 별들을 바라보다가 별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어떤 별에게는 친구의 별명을 붙이기도 하다가 산협 막치미에서 군불을 때며 어린 애인이 중얼대는 서귀포 바람 이야기 떠올리다가 소처럼 웃으며 머리 들 때 내 이마에 와 부딪치는 캄캄한 개구리 울음 같은 어둠 이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또 있는가 가만가만 그 품에 안기는..

한줄 詩 201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