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탄생 - 윤의섭
불면이란 밤새 벽을 쌓는 일이다
감금, 꺼지지 않는 가로등처럼 뜬 눈으로 견디는
밤과 새벽 사이의 생매장
길 잃은 바람이 어제의 그 바람이 같은 자리를 배회하고
고양이 울음은 있는 힘을 다해 어둠을 찢는다
이 터널은 출구가 없다
어떤 기다림은 질병이다
간절한 소식은 끝내 오지 않거나 이미 왔다 가버리는 것
그러니 너는 얼마나 아름답단 말인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서야 겨우 잠이 든다
어떤 묘혈은 땅 속을 흘러 다닌다는데
머리맡에 꽃향기가 묻어 있다
첫 매화가 피었다고 한다
*시집, 묵시록, 민음사
상흔 - 윤의섭
이슬비에 곤두선 꽃 대궁의 향기는 여름이 지나도록 아물지 않았다
누가 꺾기도 전에 꽃은 꽃끼리 아프다
둘러보면 모조리 상흔이다
빗방울 화농, 누선을 따라 번져가는 구름 종양,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아
홀로 썩어 가는 바람은 제 몸을 이식하며 연명한다
노을처럼 깊은 상처는 말을 할 줄 안다
늘 도지므로 늘 같은 말이다
낫지 못할 것이다
살면서는 아무도 치유된 적 없다
별조차도 불치의 기원을 모르며
흘러나오는 빛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피인 줄 달 역시 모른다
낫지 못할 것이다
이 가장 오래 된
빗나간 적 없는 참언
# 윤의섭 시인은 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으로 아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199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묵시록>이 있다. 대전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풀밭 버섯 피워 내듯이 - 오두섭 (0) | 2018.03.16 |
---|---|
무명에 들다 - 허림 (0) | 2018.03.16 |
황혼의 엘레지 - 서규정 (0) | 2018.03.16 |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 박석준 (0) | 2018.03.16 |
떠돌이의 기준 - 이용헌 (0) | 2018.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