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풀밭 버섯 피워 내듯이 - 오두섭
한 살이라도 더 먹는 건
아무래도 섭섭한 일
저 어린 것들 무른 눈동자
촐망촐망 영글어야 하고
새벽 밝고 한낮 뜨거워 저녁이 오면
별들 하늘에서 광년으로 내달려와
그 눈 속에서 빛나야 하고
새끼 나무들 건방지듯 쑤욱쑤욱 자라나
성성한 잎 단단한 팔다리 근육 키워서
바람과 새와 달과 별들의 둥지
아름답게 지어야 할 일이고
내가 옹기마냥 구부러지며
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그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좀 쑥스러운 일이겠지만
병상에 누워 약효 키우는 투병의 숨결에
고목 가장 깊은 상처에서 움트는 재생의 씨앗에
열병에 몸 빼앗겨 황홀하게 빠져든 몽유병에
또 그것을 기다리는 모든 것들에게
깊이 찔러볼까, 시간의 주사바늘
무심히 다니는 그 길섶에 누워 있다가
반짝반짝 피어나는 시간의 소금들이여
하루살이 버섯들이여
내 삶 슬픈 마디마디에 스며드는
링거액 같은
*시집, 소낙비 테러리스트, 문학의전당
내 생각에 망령 여럿 - 오두섭
이것들,
나보다 한발 앞서 가는 이것들
벼랑 끝 아슬아슬 매달린 이것
낡은 유곽 주저앉아 술잔 기울이는 이것
해 뜨는 곳으로 난 길을
땅거미로 덮어버리는 이것
노래 흐르는 강물 말려버리고
내 가슴에 미약 묻혀 꽂을
비수 같은 이것
언제나 내 길목 긴 그림자로 숨어
어쩌다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면
모가지 중간쯤에서 내 혀를 당기는 것들
고해성사로 구부린 무릎에
꽃방석을 받치고
이따금 내 몸으로 빙의까지 하는
이것들, 이것들
내 안에 둥지를 틀고
새끼까지 치면서
내 삶의 신탁까지 넘보는
이것들 이것들, 이것들
알고 보면 내가 잉태하고 키운
# 오두섭 시인은 1955년 경북 호미곶에서 태어나 선산과 대구에서 성장했다. 197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 되었고 서울예술대학을 다녔다. <소낙비 테러리스트>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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