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외길, 긴 것의 외로움을 따라 - 황학주

마루안 2018. 3. 17. 21:19



외길, 긴 것의 외로움을 따라 - 황학주



그날처럼 마음을 두드린 인연의
무수한 배를 대러 오는지
멀찍이 발 밑에
파도는
다치지도 않고
내 상처 꼬리 같은 해안으로 해안으로 밀려온다
연인들이 의자를 갖다 놓은
방파제보다 먼 곳으로 나는
외길, 긴 것의 외로움을 따라간다
오래 전이라서 정지된 것 같은
이별이 하나 배처럼 떠 있다
거기 있느냐
망각은 바다처럼 넓게
목숨 걸겠다는 사랑도 데리고
영혼이 슬픔으로 벌집을 낸 꿀을 따먹고
봄날은 거기 갔느냐
흘러가는 구원이었던
여관들었던 지상의 시편들도
이내 메마르고 저문
나의 제일 흔해빠진 죄는 이제보니 쓸쓸함이었네
기다리지 않겠다 기다리겠다 하얗게 부서지는 마음의
온순하지 않은 파도여
세상에서 누가 사랑을 해방했었느냐
사랑을 실어나르는 수상한 배의 이름을 대라
도화가는 들찔레길이
언덕 너머
나의 오후를 한참 주워간다



*시집,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혜화당








허공의 노래 - 황학주



허공의 아련하고 한적한 현관
사랑한 사람들의 쓸쓸한 등이
모두 낙엽지며 저 물에 고이고
목이 메는 적막의 자갈을 넣고,
발 디디지 못한 시간들이
미나리단 바람을 일굴 때
먼저 불려 간 사랑은 오래 잘 있느냐구
섬들이 딱지 앉아 있는 상처의 바다에
헛간 같은 배,
참 많게도 갈앉은
내 출발의 뼈대들도 있으니
저런 게 모두 꿈의 욕망 아니더냐구.


마음 밖엔 둘 데 없는 세상을 받아
썩지도 못하는 길을 갔으니
나는 맑지 않았네.


가슴뼈 하나 장랑을 친 듯
외롭다는 말을 돌밭처럼 걷는다
내 살던 방인 내 몸으로도
여기도 아픔일텐데
하늘에 바쳐지지 않아 죽을 때까지
상하고 사는 것도
땀에 젖은 희망이라


바닷가 황량한 한 생애를 또
내 진밥같이 먹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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