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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었으므로, 진다 - 이산하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의 사찰기행문이다.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난 이산하 시인의 본명은 이상백,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었지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낸 시집은 딱 두 권뿐이다. 그는 외할머니가 주지로 있는 사찰에서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산하 시인이 전국 사찰을 돌며 쓴 기행문이다. 그의 발길을 따라 독자는 오고 가는 과정에서 사무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도 내려 와서 제대로 살지 못함을 반성하기도 한다. 비록 많은 시는 쓰지 못했지만 시인 행세를 해도 충분히 설득이 되는 글이다. 은해사를 다녀 오며 쓴 대목에 이런 문장이 있다. . 은해사는 추사의 글씨가 많기로 유명한 절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곳을 가 봤지만 은해사는 못갔다. 이 책으로 그 절에 완전 빠졌다. 시인은 ..

네줄 冊 2018.05.14

거울 앞에서 - 박승민

거울 앞에서 - 박승민 스무 살 때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란 여자의 말은 공황이었다 신발 뒤축만 따라 돌계단 내려올 때 10월의 별들 이빨을 물고 물때를 아는 파도가 모래의 발등을 적시듯 기다리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한 번은 불시착하는 것 집 떠난 소년처럼 낯선 항구를 떠돌다가 마침내 고향집 문 앞에 서는 것 다만 그 망망대해, 혼자 남는 날 내가 지을 수 있는 몇 가지 표정에 대해서 숙고 중인 것이다 사람은 어떤 자세로 마지막 잔을 비워야 하는가 덜 추해지는가 거울 앞에서 3류 배우처럼 이리저리 표정을 잡아보는 것이다 *시집,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사 메모 - 박승민 지금 이 세상 어느 수은등 밑에서 울고 있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했다 세상이 우리를 돌게 할지라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기..

한줄 詩 2018.05.14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존엄사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이 3대 거짓말에 들어간다지만 그만 살고 싶다는 노인이 있다. 며칠 전에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해 생을 마감한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이야기다. 그는 올해 104 세였지만 위독한 병이 없어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시력이 나빠 앞을 거의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할 뿐 정신도 말짱했다. 평소 나도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었기에 많은 생각을 했다. 건강한 사람이 택한 최초의 안락사로 기록된다. 너무 오래 사는 저주를 스스로 극복한 사례가 아닐까. 고국인 호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스위스로 갔다. 생의 마지막 여행은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였고 그는 스스로 스위스보다 더 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을 떠났다. 전날 ageing disgracefully..

열줄 哀 2018.05.14

문밖에서 - 박용하

문밖에서 - 박용하 사람을 아끼는 일이 일 중의 일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여러 세월이 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하게 사는 것이 힘들었다 세상을 버리는 야심이 세상을 지배하는 야심보다 더 지고한 야심일 수도 있었다 남이 보라고 들으라고 울 수는 없었다 그것이 한계였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다 성자는 따로 있었지만 외따로 있지는 않았다 남의 자식을 지 새끼처럼 키우는 성자가 대문 바로 앞에 산다는 것을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나쁜 일은 생색내기 딱 좋았다 좋은 일은 얼굴을 들고 다닐 정도로 한가롭지도 않았다 사람을 아끼는 일이 일 중의 일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눈먼 사랑과 눈뜬 죽음이 가버린 후였다 세상에 내 몸 아닌 것이 없겠지만 내 몸보다 귀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인간이 처한 천하 대사일 거라고 생..

한줄 詩 2018.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