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끝이 휘어진 기억 - 김남호

마루안 2018. 5. 14. 19:58



끝이 휘어진 기억 - 김남호



5월은 빛나는 낚시바늘이었다
고래가 낚시를 피해
사막으로 들어간 날
밤새 늑골이 욱신거렸다
소주병을 낚아도 소용없을 때는
늑골로 심장을 낚았다
월척이었지만 죽어 있었다
아픔도 길이로 잴 때였다
늑대가 횡행하는 5월이었고
늑대의 울음은 부피에 가까웠다
사막에도 피는 꽃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가 사막인 줄 몰랐거나
자신이 꽃인 줄 모르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사막의 꽃들은 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꽃이 지지않는 사막에서의 낚시는 지루했다
사막으로 들어간 고래는
끝내 끌려나오지 않았다
사막만 끌려나왔다
5월이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집, 링 위의 돼지, 천년의시작








그라운드 제로 - 김남호



공기놀이를 잘하는 것과
당신의 폐활량을 늘이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어


커다란 폐활량을 가지고 신호등 앞에서
세 개의 공기를 동시에 던졌다가
파란 공기를 번번이 놓치는
코끼리가 그 증거야


믿을 수 없다면 비 오는 날
모텔에서 걸어 나와 보면 알 수 있어
빗물이 튀겠지만 당신의 어디에도 우기의 흔적은 없을 거야
얼룩을 잘 발효시키면 무늬가 될 수도 있지


교미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싸우는 호랑이를 본 적이 있다면
호피무늬 원피스의 새빨간 입술을,
실룩이는 엉덩이 밑으로 축 늘어진 혓바닥을,
또각또각 걸어가는 보도블록의 깨진 이빨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겠지만
공기놀이를 잘하는 것과
당신의 가슴을 가로질러 바람 빠진 자전거가 지나가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어


리어카에서 파는 빈폴이
그 증거야






# 김남호 시인은 1961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 경상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2005년 계간 <시작>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링 위의 돼지>, <고래의 편두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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