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소문 - 권오표 떠도는 소문 - 권오표 떠도는 소문은 썩은 모과처럼 검고 눅눅하다 산 아래 대나무집, 아비가 누구인지 소문만 무성한 당골네 아들은 동네에 온 빨치산 따라 산에 들어가 난리 뒤에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홀로 뒷동산에서 종일 들 건너 강만 바라보다 돌아오는 그를 두고 .. 한줄 詩 2018.05.10
아버지를 기다린다 - 고영민 아버지를 기다린다 - 고영민 옆에서 소변을 보던 아버지가 내가 손을 씻고 머리를 매만질 때까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요즘 들어 나도 점점 무언가를 끊는 게 힘들어졌다 털고 뒤돌아서면 그만이던 것이 이젠 뒤돌아서도 영 뒤가 개운찮다 술을 먹어도, 글을 써도, 사람을 만나도 뭔.. 한줄 詩 2018.05.10
봄의 매질 - 김병심 봄의 매질 - 김병심 제자리에 돌아와 앉으라 정령의 말이 깨어나는 안개 속에서 까마귀가 일어선 빈 둥지에서 또렷한 향기로 퍼지면 도시를 헤매던 머리가 맑다 용강동에 매화 피었다 절물 삼나무 숲에서 복수초가 감자처럼 드러나면 공동묘지의 삐쭉인 푸성귀 밥상이 수목원 진흙탕에 .. 한줄 詩 2018.05.10
낡은 등산복에 대하여 - 박수서 낡은 등산복에 대하여 - 박수서 지난 밤 꿈 아버지 자리에 눕기 전까지 일주일이면 몇 번은 땀에 젖어 지친 통풍과 함께 돌아왔을 아버지처럼 늙은 옷걸이에 걸려있는 낡은 등산복을 야윈 어깨 박쥐처럼 벌려 입으신다 남해에 간다 하시는데 나는 눈물만 흘리다 아버지의 발등에 말뚝을 .. 한줄 詩 2018.05.09
놓치다, 봄날 - 이은규 놓치다, 봄날 - 이은규 저만치, 나비가 난다 귓바퀴에 봄을 환기시키는 운율로 흰 날개에 왜 기생나비란 이름이 주어졌을까 색기(色氣) 없는 나비는 살아서 죽은 나비 모든 색을 날려 보낸 날개가 푸른게 희다 잡힐 듯 잡힐 듯, 읽히지 않는 나비의 문장 위로 먼 곳의 네 전언이 거기 그렇.. 한줄 詩 2018.05.09
식사라는 일 - 김경미 식사라는 일 - 김경미 기러기 같은 입술 하루만 닿아도 은수저가 변한다 치약으로 닦아낸 헝겊이 새까맣다 - 식사는 검은 침의 일 형광등처럼 새하얀 북극곰 너무 새하얘서 안 보일 지경인데 바다코끼리를 먹느라 가슴팍이며 다리까지 온통 다 피 칠갑이다 - 식사는 피범벅의 일 치타의 .. 한줄 詩 2018.05.09
가을나무처럼 우리가 - 이강산 가을나무처럼 우리가 - 이강산 잎 떨구는 나무를 보고 가을엔 생각했다 저것도 다 제 삶의 방식대로 핏줄 끊는구나 한 겹씩 살점 늘어가는 봄을 겪어왔으므로 미련 없이 허물 벗는구나 썩은 배추밭에서 신도시로 폐광촌으로 길을 옮기며 생각했다 우리 생존의 희망이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슬픔도 뚝살을 더해가는구나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다 허물 벗고 봄 기다리는 가을나무처럼 모자라거나 넘치는 만큼 우리가 이룰 일들이 제때를 기다린다 여겼다 싸움도 사랑도 잠시 쉬는 듯한 새벽 거리에 서서 사람들의 가을이 되고 봄이 되어줄 아침을 기다리며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실천문학사 꽃불 - 이강산 가을이라 꽃핀다고 한 송이 활짝 피어서야 꽃이겠는가 이제 막 벙그는 꽃대궁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낮은 키 못난 대로 .. 한줄 詩 2018.05.09
당당한 혼밥 며칠 전의 일이다. 지인이 오후 두 시가 휠씬 지났는데 여태 밥을 먹지 못했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기가 부담스럽다는 거다. 둘이 가서 한 사람만 밥을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지만 혼잡한 시간이 아니라 함께 들어갔다. 하긴 예전에 그런 사람이 있긴 했다. 구내식당에서도 혼자 밥을 먹지 않았다. 한번은 물었더니 남이 보고 얼마나 인간성이 나쁘면 혼자 밥을 먹나 생각할까 그렇단다. 지나친 주변 인식이다. 당당한 혼밥이 필요하다. 혼자 영화 보러 갈 줄도 알아야 하고 혼자 밥 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 혼술은 좀 그렇더라도 혼밥까지 주변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 다섯 景 2018.05.09
늦은 봄비 - 서범석 늦은 봄비 - 서범석 꽃 진 자리다 머물던 욕망도 하늘을 놓는다 울음을 길게 조이던 새가 헤매던 숲길을 떠났다 뜻 모를 책 속에 피던 사랑도 함초롬히 젖은 손을 곱게 턴다 약속처럼 차곡차곡 쌓이던 나이도 조용한 아침을 깨우는 악보일 뿐 가고 또 오던 봄도 가을도 한낱 흩어지는 소리.. 한줄 詩 2018.05.09
꽃잎 한 장 지는 일이 - 장시우 꽃잎 한 장 지는 일이 - 장시우 느리게 걸으며 한 호흡을 아껴보니 그 숨길이 달고 깊다 쌀 한 톨 천천히 꼭꼭 씹어보니 그 맛이 깊고 달다 눈과 귀를 열고 세상에 펼쳐지는 일들을 헤아리니 죽고 살고 찌르고 버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일들이 분과 초를 다투며 일어난다 오늘 누군가 또 .. 한줄 詩 2018.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