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존엄사

마루안 2018. 5. 14. 19:08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이 3대 거짓말에 들어간다지만 그만 살고 싶다는 노인이 있다. 며칠 전에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해 생을 마감한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이야기다. 그는 올해 104 세였지만 위독한 병이 없어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시력이 나빠 앞을 거의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할 뿐 정신도 말짱했다.

 

평소 나도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었기에 많은 생각을 했다. 건강한 사람이 택한 최초의 안락사로 기록된다. 너무 오래 사는 저주를 스스로 극복한 사례가 아닐까. 고국인 호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스위스로 갔다. 생의 마지막 여행은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였고 그는 스스로 스위스보다 더 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을 떠났다.

 

전날 ageing disgracefully라는 문구가 쓰인 셔츠을 입고 세계 언론사와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너무 오래 살아 부끄러웠을까. 90까지는 인생을 즐겼지만 이후엔 아무 의미 없는 생의 연장이었다고 회고한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점심 때까지 앉아 있는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엔 저녁 때까지 앉아 있는다.

 

이 나이까지 사는 것을 후회한다면서 고국에도 안락사가 허용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손자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화초 만발한 정원에서 이승의 마지막 산책을 한다.  2018년 5월 10일 오후 12시 30분. 가족들과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맥 주사에 연결된 밸브를 스스로 열어 치사량에 해당하는 신경안정제를 맞고 생을 마감한다. 먼 여행길의 마지막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였다.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나를 기억하려는 어떤 추모 행사도 갖지 말라.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증해라. 유언 또한 간결하면서 깊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평소 생각했던 유언과 똑 같을까. 그럴 리는 없겠으나 나도 너무 오래 살까 두렵다.

 

 

 

 

 

 

 

 

생을 마치기 전 꽃이 만발한 공원에서 손자와 함께 마지막 산책을 했다. 이때 구달 박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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