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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또다시 - 신동호

안개 속에서 또다시 - 신동호 한 사내의 기억에는 중앙선 열차에서 버려진 아이의 울음만 남고 뙤약볕 아래 해바라기로 배를 채우던 눈물만 남고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그 여름 꽃잎 지고 사랑도 떠나고 그저 안개 속을 걷는다 안개, 안개 말고 무엇이 있겠나 막막한 오늘이여 날 저물면 오래도록 혼자였지 않았나 열차 안에 기다리라던 낡은 외투의 그는 아버지이지 않았겠나 사내는 그렇게 안개의 마을을 찾아들고. *시집, 저물 무렵, 문학동네 밤바다 - 신동호 시절이 지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아니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변할 것인가 순간은 찰나는 헛된 것이라 했네 비 내리는 바닷가 낡은 여관 창문으로 검은 바다 갇힌 바다가 속삭이네 비 내리네 세상에 나뿐이네 아니라 아니라 했네 나 돌아가야 하고 나 기다리는 이 있기 ..

한줄 詩 2019.05.23

동백 다방, 그 쓸쓸함의 기억

동백 다방이 어디에 있는지는 묻지 마라. 이 다방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자리 하고 있으니까. 내가 다방을 처음 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못한다. 아마도 스무 살 무렵 학교 앞 음악 다방이었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동백 다방은 군복무를 했던 서해안의 작은 포구에 있었다. 군기 바짝 든 신입병 시절이야 엄두를 못 냈지만 말년병 때는 자주 머물던 곳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들어갈 때나 누가 면회를 왔을 때도 이곳이 만남의 장소였다. 홍마담과 미스 양이 생각난다. 여러 명의 레지들이 있다가 떠났지만 다른 사람은 별 기억이 없다. 당시의 다방 레지들은 보통 6개월 정도 머물다 떠났다. 미스 양은 1년 가까이 머물렀을 것이다. 유독 나한테 살갑게 대해주던 미스 양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지만 마을..

다섯 景 2019.05.22

빨간 양배추와 양파는 어떤 꽃을 피우는가

올레길을 걷다가 노란 꽃이 핀 밭이 보였다. 이미 수확을 끝낸 버려진 밭이었다. 들꽃은 아닌 것 같고 호기심에 밭으로 내려갔다. 벌도 보이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궁금증은 금방 풀린다. 밑부분에 빨간 양배추가 받침처럼 놓여 있었다. 적채라고 부르는 양배추 일종이다. 수확을 포기하고 내버려 두니 꽃대가 올라와서 이렇게 꽃을 피운 것이다. 양배추는 밥상에 오르는 역할을 포기 했을 때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에 양파꽃이 하얗게 피었다. 뽑아 보질 않았으니 양파가 아닌 파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두 꽃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양파도 제 역할에서 벗어 나서야 꽃을 피웠다. 양파꽃에 양파 향이 나고 적채 꽃에 양배추 향기가 났다. 화려하진 않지만 귀한 꽃을 본 날이었다.

다섯 景 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