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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19년 여름호 시인 탐색

새로 나온 시집을 처음 접할 때처럼 금방 나온 따끈한 문예지를 들출 때도 마음이 설렌다. 이걸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맛난 음식 앞에서 군침이 도는 것처럼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 또한 내게는 식욕처럼 무언가를 전달하는 에너지원이다. 이번엔 어떤 시가 실렸을 거나. 문학과 사회와 함께 창비는 늘 나를 설레게 하는 잡지다. 다른 세련된 문예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처럼 두 잡지는 내 청춘의 추억 속에 담긴 문예지다. 애지중지 모았던 그 많은 과월호를 모두 떠나 보냈지만 나름 치열했던 시절은 여전히 그 잡지들과 함께 가슴에 남아 있다. 이번 호에는 두 시인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의 시를 올릴까 하다 그냥 두 사람 다 올리기로 한다. 두 편씩 시를 발표했으니 네 편이다. 전부 올리자니..

여덟 通 2019.06.01

어느 대평원에서 - 허문태

어느 대평원에서 - 허문태 어쩌면 이리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내가 출발한 곳이 산인지 들인지 길을 따라 왔는지, 강을 따라 흘러 왔는지 음악은 아다지오였는지, 알레그로였는지 자꾸만 기억이 사라져 간다. 흰구름 뭉게뭉게 끝없이 아득한 푸른빛이 하늘바람 산들산들 돛을 펄럭이며 가는 붉은 마을이 어쩌면 이리도 평안하고 설레일까? 더는 흘러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멀리까지 흘러 왔다. 참 멀리까지 흘러 왔다. 이따금 서로 맞서던 저 산맥도 어느새 여기까지 흘러 왔구나. 가만히 바다에 안긴다. *시집, 달을 끌고 가는 사내, 리토피아 달을 끌고 가는 사내 - 허문태 사내의 달이 땅에 떨어져 깨진 것은 9월 중순이다. 무릎 끓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속도를 내던 사내 뇌출혈이 사내의 폭주를 움켜잡고 무릎을 ..

한줄 詩 2019.05.31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지난 연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인데 여태 한쪽에 밀쳐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진즉에 읽으려고 신간 목록에 올라 있는 책이긴 했으나 순위에서 밀린 책이다. 나는 희한하게 광고가 요란하고 저자가 여러 매체에 나와 설치는 책은 되레 멀리하고 싶다. 그래서 서점 앞자리에 줄줄이 진열된 베스트셀러 잘 안 읽고 그 많은 천만 영화도 극장에서 본 것은 변호인 빼고는 없다. 안 봐도 그리 아쉽지 않고 언제 기회가 있겠지 뭐 이런 생각으로 지나친다. 그러다 영영 만나지 못한 작품이 많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에 큰 만족을 못 느낀 것도 그런 이유다. 가능한 숨어 있는 책을 읽으려는 생각, 좋은 저자를 발견한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영화도 저예산 영화가 좋다. 출판사도 책을 선택하는데 중요하다. 한겨레출판은 좋..

네줄 冊 2019.05.30

토르소를 아는가 - 황원교

토르소를 아는가 - 황원교 토르소를 아는가 팔다리가 없어도 꼿꼿이 서 있는 그 고집, 일곱 해 병상에 누워 내가 흘린 자유는 장작개비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사랑을 맹세하던 여자는 떠나 남은 것은 술 한 잔의 공허, 어느 날인가, 그것마저도 깨어지고 부서져 날리고 이 겨울 병상은 혹한의 유형, 봄이 오지 않는 유형지에 갇혀 내다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워라 어제를 마지막 날처럼 다시 내일도.... 토르소 같은 의식을 앞세우고 삭풍 속에서도 사랑은 깊어간다 *시집, 빈집 지키기. 문학마을사 지팡이 - 황원교 -H에게 너는 한 그루 나무로 내게 왔다 피울음 절은 영육의 나날을 그늘 지우며 푸른 잎사귀 더욱 푸르게 붉은 꽃 더욱 붉게 피는 그 무덥고 잔인한 여름의 한가운데를 걸어온 너의 상처를 보며 나의 아픔..

한줄 詩 2019.05.30

그린북 - 피터 패럴리

영화 은 예술성이 뛰어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힘 세고 무식한 백인 운전사가 함께 한 8주 간의 여행 이야기다. 1962년 피아니스트 는 미국 남부로 연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운전사를 구한다. 라는 나이트클럽 경비원 출신의 백인 운전사다. 미국 남부는 유독 흑인 차별이 심한 지역이라 흑인이 들어갈 수 없는 식당도 많고 심지어 화장실 사용까지 구별이 되었다. 이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를 초청한 사람들이 상류층 백인 지식인이지만 연주장 밖의 차별은 어쩔 수 없다. 영화 제목이 그린 북인 이유는 연주 여행 동안 도움이 되는 흑인 여행가를 위한 안내서가 그린 북이기 때문이다. 남부 지역에서 흑인이 묵을 수 있는 숙소, 식당, 주유소 등을 소개하는 그린 북은 유용하면서도 흑인을 차별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실제 그..

세줄 映 2019.05.30

나무의 하복부에 꽃이 필 때 - 서규정

나무의 하복부에 꽃이 필 때 - 서규정 남들은 너줄너줄 명함을 건네며 떡방아 찧듯 절을 할 때 절구는 달나라에 있는 거지 비웃음을 쳤다 대학에도 관계를 했고 사회사업에도 손을 댔으며 필요에 따라 당적을 옮기기도 하는 삶은 결국 실행이란 말이지 내 또래의 사내들이 어흐흐, 스프레이 같은 웃음을 뿌리며 잡는 소매 끝에서 투서용 봉투 같은 누우런 손목들이 쑥 삐녀 나올 것 같은 겨울은 투서의 계절이다 남들이 만들 것 만들고 떵떵거릴 때 이룰 것 못 이루고 단 한번 성폭행에 성공한 것을 이력으로 내밀까 내밀어 버리자 그대의 직업은 바닥이라기보다 모럴의 살얼음판 위에 당당한 반열이라 꼬드겨 독감에 걸려 누워 있는 반시체를 겁탈한 아으 겨울, 마른 살가지를 흔들며 괜찮아 괜찮대두요 나무는 하복부에 꽃이 필 때 싸알..

한줄 詩 2019.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