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또다시 - 신동호
한 사내의 기억에는
중앙선 열차에서 버려진
아이의 울음만 남고
뙤약볕 아래 해바라기로 배를 채우던
눈물만 남고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그 여름 꽃잎 지고 사랑도 떠나고
그저 안개 속을 걷는다
안개, 안개 말고 무엇이 있겠나
막막한 오늘이여
날 저물면 오래도록 혼자였지 않았나
열차 안에 기다리라던
낡은 외투의 그는
아버지이지 않았겠나
사내는 그렇게
안개의 마을을 찾아들고.
*시집, 저물 무렵, 문학동네
밤바다 - 신동호
시절이 지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아니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변할 것인가 순간은 찰나는 헛된 것이라 했네
비 내리는 바닷가 낡은 여관 창문으로 검은 바다
갇힌 바다가 속삭이네 비 내리네 세상에 나뿐이네
아니라 아니라 했네 나 돌아가야 하고 나 기다리는 이 있기 때문이라 했네
밤바다는 여관의 슬레이트 지붕 위로 비 내리는 밤 바다는 빗소리만 전해주었네
부정해야 하는가 부정하지 말아야 하는가 내 살아온 날들을
어떤 이는 잘살아왔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잘못 산 것이라고 그럼 내 생각은
때 묻은 백열등으로 날벌레들 날아들었네
그럼 자신의 신조를 굽히지 않고 사는 것은 그것의 선악은
귀 뒤에 붙은 날벌레 쫓지 않고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를 받아보네
비 고이네 처마 끝을 떠난 빗물은 땅에 떨어지는 당연한 이치 인류의 이전부터
바다는, 바다는 마르지 않을 것이네 밤바다는 갇힌 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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