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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꽃을 바라보며 - 류정환

조팝꽃을 바라보며 - 류정환 잊지 않고 조팝꽃이 피었습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듯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밥그릇 위로 솟아오른 쌀밥같이 해가 바뀔수록 하애지는 그 꽃을 알게 된 지 서른 여섯 해, 생각해 보니 잊지 않고 내가 한 일은 입에 밥 떠 넣는 일 뿐이었습니다. 일년 열두 달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흰색을 덜어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작은 꽃들은 세상을 밝힐 궁리를 하느라고 머리를 맞대고 붕붕거립니다 저희들끼리 눈을 맞추고 깔깔대는 동안 두 눈은 하얗게 짓무르고 나도 한번쯤 흰 꽃을 피우고 싶어 급한 마음이 벌떼처럼 잉잉거립니다. *시집, 검은 밥에 관한 고백, 고두미 위태로운 밥상 - 류정환 부러진 상다리를 붙들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제법 그럴듯한 밥상을 이루었구나! - ..

한줄 詩 2019.05.29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 박서영 시집

이 시집을 읽고 박서영 시인을 알았다. 내가 시를 전문적으로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라도 읽었을 법한데 박서영의 시를 읽을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인연이 닿은 그녀의 시를 꼼꼼히 읽어볼 요랑이다. 나는 유독 유고 시집에 집착한다. 유고 시집을 달고 나온 시집은 가능한 읽는 편인데 이 시집은 제목부터 유독 눈길을 끌었다. 시인을 검색하자 다른 유고 시집이 또 있다. 작년 초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올해 두 권의 유고 시집이 나온 것이다. 일단 두 권 다 읽었다. 하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출판사에 시집 의뢰를 한 것이고 이 책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유족과 지인들에 의해 나온 1주기 시집이다. 족발집처럼 원조 따지자는 것은 아니나 엄연히 말하면 이 책이 진짜 ..

네줄 冊 2019.05.28

난독증 - 육근상

난독증 - 육근상 점심도 못 먹고 돌아온 남편 밥이나 차려줄 일이지 여편네가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나 부아 치밀어 전화했더니 바로 옆 탁자에서 벨이 울린다 전화기까지 놓고 갔다며 액정화면 보니 ㅅㅂㄴ 이놈의 여편네가 얻다 대고 ㅅㅂㄴ이야 독 품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인데 장바구니 끼고 언제 들어왔냐며 수박 좀 받으라 한다 수박 받아 들고 어떻게 남편 이름을 ㅅㅂㄴ이라 할 수 있어 성 내는데 한참 바라보더니 저녁은 먹고 다니냐며 혀를 찬다 나 같은 ㅅㅂㄴ이 어떻게 저녁까지 먹고 다닐 수 있어 라면 끓이려 냄비에 물 받는데 서방님을 서방님이라 쓰지 그럼 뭐라고 써 라면 먹지 말고 상추쌈에 밥 먹으라며 상을 본다 밥이 별로 보이고 물이 불로 보이고 서방님이 ㅅㅂㄴ으로 보이는 난독의 폭염이 자꾸 눈꺼풀 뜯어내는 ..

한줄 詩 2019.05.28

정인진 칼럼 - 사법연수원 동기 노무현, 그립다

# 경향신문에서 정인진 변호사의 칼럼을 읽었다.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라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데 판사 출신의 이 양반 글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가슴 시린 문장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법연수원 동기 노무현, 그립다 내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 사법연수원에서였다. 7기생 전원 58명이 교실 하나에 모여 앉아 2년을 보냈으니, 나도 그를 조금은 안다고 할 만하다. 동기생 중 유일한 고졸 학력이고, 늘 웃는 얼굴의 촌사람풍이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거셌다. 맨 처음 기억나는 일은 연수원에서 소풍을 갔을 때였다. 연수생들이 나와서 각종 장사치 흉내를 내는데, 뱀장수, 속옷장수 다음에 그가 나와서 면도날장수 흉내를 냈다. “그럼 이 돈을 다 받느냐?”라며 물건..

여덟 通 2019.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