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부르는 저녁 - 문신 오늘 저녁은 낡은 상자를 내려놓듯, 다만 다소곳한 노래가 되어 세상에 주저앉는다 상자는 유월의 평상에 나앉은 사람처럼 선과 면의 각오로 저녁에 기대었고 건너편에서 까닭 모를 아픔처럼 어린 사과나무의 그늘이 침침해져 간다 그러니 상자에는 상자의 내력이 어둠에는 어둠의 내력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슬픔에는 슬픔의 내력이 있다는 말을 누가 이 저녁, 캄캄해져 오는 바람의 찬란한 침묵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 먼바다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일처럼 우리의 상자는 그렇게 낡아 간다 바다라니 ...... 노래의 침묵처럼, 그 침묵에 벗어 놓은 신발처럼, 저녁이 가지런하게 건너올 때 그 주춤거리는 걸음을 마중하는 처마 끝 흐린 등불 같은 심정으로 캄캄한 슬픔이라고, 손에 닿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