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를 씹는 이유 - 김용태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자식 같은 새파란 것에게
이유 없이 삿대질, 욕을 먹고
치밀어 오르는 분에
어디 밥 빌어 먹을 데가
여기 뿐이겠냐고
호기롭게 사표를 내던지고 나오자
최씨, 쓴 커피를 타 건네며
어지간하면 참고 견디어 보라면서
의자를 내민다
주저앉은 경비실 한쪽 화면 속에는, 낙타 한 마리
말라비틀어진 다리 사이에
불어 터진 젖통을 매달고
억센 가시나무를 씹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 낸 상처에서 비어져 나오는 뜨거운 것을
목구멍 뒤로 넘기는 것이라고
그래야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아 죄 없는 짐승의 선한 눈이라니
그러다 문득, 사막 저편에서
굶주려 애타게 어미를 기다리고 있을,
날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돌이 떠올라
접시꽃 피어 환한 관리소 쪽으로, 자꾸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이었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나는 무죄입니다 - 김용태
쫓기듯 떠밀려
바닷가 여인숙 빛바랜 전등 아래 누웠습니다
파도 소리 멀어지고
이따금 들이치는 빗줄기가
떠나간 당신 눈물인 듯도 하였습니다
나 말고 누가 또 여기에 와
사마리아의 여인,
한 마리 불나방을 꿈꾸다
절망의 밤을 보냈는지
얼룩진 벽지엔 몸부림 흔적
믿었던 사랑은 부서져 모래가 되고,
욕된 과거가 되고
하룻밤 사랑도 얻지 못해
혼자 수음하며 잠 못 드는
사내의 가난한 밤,
늙은 작부의 거룩한 사타구니 같은 어둠 속에
초록 알로 갇힌, 나는
주여, 그녀를 용서하소서
# 김용태 시인 충남 공주 출생으로 2016년 <문학사랑> 신인작품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대전 문인협회 회원, 2021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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