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솎으며 - 홍신선 그동안 먹었던 과일 하나도 실은 얼마나 숱한 다른 도사리들의 희생과 헌납이 깊이 떠받들어진 것이었는지 간 봄날 쏟아져 나와 천지를 꽉 매웠던 그렇게 잠시 공중에 우르르 몰려나와 얼굴 붉히던 복사꽃들 지고 꽃자리마다 만원 전동차 안처럼 다닥다닥 매달린 작은 열매들 나는 그걸 솎아 준다고 나뭇가지에 성상(性狀) 좋은 놈 한둘 남기고 다 훑어 내린다. 그래도 결실 떠안을 놈만은 악착같이 움켜쥐고 매달린다. 그 풋열매는 떠맡은 그대로 이내 제 곳간을 열어 햇볕과 바람 그리고 끝내는 이 건곤마저 들여 쌓겠지. 올해도 잘 익은 복숭아 몇 알의 채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익지 못할 풋실과들이 죽어야 했는지 솎임을 당해 붕락했는지.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낙과를 보며 - 홍신선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