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에서 별을 보며 울다 - 류흔
잊지 못하는 것은 잊을 수 없다
잊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지막이 처음에서 시작되듯
마지막 순간에 처음이 들어왔다
시간은 가로 건너는 풍경,
심장을 누르는 가벼운 공기들
중력이 없으니 수심(愁心)도 없으리
옆으로 깊어지는 숲으로
황혼이 안개처럼 깔릴 때
처음으로 마지막이 시작되었네
이런 벌판에 별은 곤란하므로
별이 박이기 전에 분위기를 사수(死守)해야 해
오늘은 어둠이 있었고
별이 떴다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지만
별에게 쏘아 올릴
총신(銃身) 한 그루 없는 불모지에서
나는 그만 중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총체적 슬픔 - 류흔
이 밤에 무얼 생각해야 했을까
달이 게워논 따뜻한 토사(吐瀉)를 밟으며
인적은커녕
걸레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모래톱에 앉아
포구에 다다른 길이
허청허청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강은 혀를 찰랑이며
한 백만 년은 족히 핥아왔을 것이다
무한대로 오늘을 찍어내는 세월 곁에서
대대로 오늘의 절반이었을 이 밤을 생각한다
현관이 여러 개의 신발로 나누어지듯
저 강은 또 잘게 쪼갠 물결로 나뉘어져
너울너울 연쇄(連鎖)할 것이며
검고 길쭉한 슬픔과 함께
바닥에 갈앉았던 길도 같이 흘러가다
하류의 어느 기슭에선가 건져지겠지
이 밤, 내게 온 슬픔은 슬픈 대로 쓸 만한가
이 강, 누가 던진 질문으로 강물은 저리 고뇌하는가
물음표에 미끼를 꿰어 던져 넣는다
걸려들 어둠과
적막,
전반적으로 이 강의 정서가 우울하며
여러 장의 막으로 형성된 적막이다
인생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눈을 깜빡이는 저 야광찌처럼
기다림에도 포인트는 있을 것이다
오줌을 참는 아이인가
나는 강물을 보며 하염없이 찔끔대다가
구름을 막 벗어난 달이 보여준
물비늘의 뒤척임을 들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나무를 씹는 이유 - 김용태 (0) | 2022.07.20 |
---|---|
그림자 무사 - 조온윤 (0) | 2022.07.20 |
좋았던 옛날 - 정덕재 (0) | 2022.07.19 |
실업의 무게 - 서화성 (0) | 2022.07.18 |
사막 - 신동호 (0) | 2022.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