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모에서 별을 보며 울다 - 류흔

마루안 2022. 7. 19. 22:03

 

 

불모에서 별을 보며 울다 - 류흔

 

 

잊지 못하는 것은 잊을 수 없다

잊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지막이 처음에서 시작되듯

마지막 순간에 처음이 들어왔다

 

시간은 가로 건너는 풍경,

심장을 누르는 가벼운 공기들

중력이 없으니 수심(愁心)도 없으리

 

옆으로 깊어지는 숲으로

황혼이 안개처럼 깔릴 때

처음으로 마지막이 시작되었네

이런 벌판에 별은 곤란하므로

별이 박이기 전에 분위기를 사수(死守)해야 해

 

오늘은 어둠이 있었고

별이 떴다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지만

별에게 쏘아 올릴

총신(銃身) 한 그루 없는 불모지에서

나는 그만 중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총체적 슬픔 - 류흔

 

 

이 밤에 무얼 생각해야 했을까

 

달이 게워논 따뜻한 토사(吐瀉)를 밟으며

인적은커녕

걸레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모래톱에 앉아

 

포구에 다다른 길이

허청허청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강은 혀를 찰랑이며

한 백만 년은 족히 핥아왔을 것이다

무한대로 오늘을 찍어내는 세월 곁에서

대대로 오늘의 절반이었을 이 밤을 생각한다

 

현관이 여러 개의 신발로 나누어지듯

저 강은 또 잘게 쪼갠 물결로 나뉘어져

너울너울 연쇄(連鎖)할 것이며

 

검고 길쭉한 슬픔과 함께

바닥에 갈앉았던 길도 같이 흘러가다

하류의 어느 기슭에선가 건져지겠지

 

이 밤, 내게 온 슬픔은 슬픈 대로 쓸 만한가

 

이 강, 누가 던진 질문으로 강물은 저리 고뇌하는가

 

물음표에 미끼를 꿰어 던져 넣는다

걸려들 어둠과

적막,

 

전반적으로 이 강의 정서가 우울하며

여러 장의 막으로 형성된 적막이다

인생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눈을 깜빡이는 저 야광찌처럼

기다림에도 포인트는 있을 것이다

 

오줌을 참는 아이인가

나는 강물을 보며 하염없이 찔끔대다가

구름을 막 벗어난 달이 보여준

 

물비늘의 뒤척임을 들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나무를 씹는 이유 - 김용태  (0) 2022.07.20
그림자 무사 - 조온윤  (0) 2022.07.20
좋았던 옛날 - 정덕재  (0) 2022.07.19
실업의 무게 - 서화성  (0) 2022.07.18
사막 - 신동호  (0) 202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