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다는 말 - 김명기
마당가 배롱나무 두 그루에 꽃이 한창이다
한 그루는 장날 뿌리째 사다 심었고
한 뼘쯤 더 자란 나무는 가지를 베어 꺾꽂이했다
뿌리째 심은 나무는 사방 고르게 가지를 뻗어 꽃 피우고
베어 심은 것은 뿌리내리며 가지를 뻗느라 멋대로 웃자랐다
그중 제일 먼저 뻗은 가지는 땅을 향해 자란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을힘 다해 살았겠지
기댈 데가 없다는 건 외롭고 위태롭다
죽을 수가 없어 죽을힘 다하는 생
뿌리가 얼마나 궁금했으면 아직도 땅을 향해 자라날까
무심코 내뱉는 근본 없다는 말에는 있는 힘 다해 뿌리내리며
허공을 밀어 올리는 수없는 꺾꽂이 같은 삶이 깊숙이 배어 있다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닮은 꼴 - 김명기
떼던 화투점 밀치고 잠든
늙은 엄마 발을 본다
길고 마른 내 발과 닮았다
종일 마당을 기웃대던 낯선 아기 고양이가
툇마루 아래서 첫날을 보내는 밤
어디서 닮은 발을 잃고 여기까지 왔을까
닮는다는 건 먼 훗날의 슬픔을 미리 보는 일
눈과 코가 닮은 아버지를 입관할 때
등을 돌린 채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마르고 푸석푸석한 저 발도
유산처럼 설움만 남기고 떠나겠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가
부끄러움을 못 이겨
높은 곳에서 몸을 날려
더 높은 곳으로 가 버린 날
그이도 나와 닮은 꿈을 꾸었을 테지
거실에서 마루 아래로
거기서 반 마장쯤
아버지가 누워 있는 산비알로
이윽고 같은 꿈을 꾸었던
사내에게로 서글픔이 번지는 동안
대물림된 발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정처 알 수 없는 생을 가늠해 보는 밤
달빛에 어룽대는 야윈 발 위로
가만히 홑이불을 쓸어 덮는 이 밤
# 김명기 시인은 경북 울진 출생으로 2005년 계간 <시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종점식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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