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씁쓸한 여관방 - 허수경

씁쓸한 여관방 - 허수경 꿈에도 길이 있으랴 울 수 없는 마음이여 그러나 흘러감이여 제일 아픈 건 나였어 그래? 그랬니, 아팠겠구나 누군가 꿈꾸고 간 배개에 기대 꿈을 꾼다 꽃을 잡고 우는 마음의 무덤아 몸의 무덤 옆에서 울 때 봄 같은 초경의 계집애들이 천리향 속으로 들어와 이 처 저 처로 헤매인 마음이 되어 나부낀다, 그렇구나! 그렇지만 아닐 수는 없을까 한철 따숩게 쉬긴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몸은 쉬고 간다만 마음은? 마음은 흐리고 간다만 몸은? 네 품의 꿈. 곧 시간이 되리니 그 품의 문을 누군가 두드린다, 나갈 시간이 되었다고? 오오, 네 품에도 시간이 있어 한 날 낙낙할 때 같이 쓰던 수건이나 챙겨 어느 무덤들 곁에 버려진 꿈처럼 길을 찾아 낙낙한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졸며 있으리라 *시집, 혼자..

한줄 詩 2015.03.02

이발소 그림 - 최치언

이발소 그림 - 최치언 항구는 제 발바닥을 개처럼 핥고 있다 그곳에서 사내는 청춘의 한때를 비워냈다 높다란 마스트에 올라 바다가 밀려오고 나가는 날들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주파수로 고정했다 깊고 질퍽한 검은 장화의 날들이었다 아낙네의 치마는 바람에 돛을 키웠다 한가한 골목마다 벌거벗은 아이들이 고무다라 속에 들어앉아 헤엄을 쳤다 용궁다방 찻잔들이 배달되고 사내는 더운 잔을 후룩 들이켰다 제 손금의 마지막 잔금을 탈탈 털어 마셨다 귓전에서 거대한 파도가 부서졌다 비탈진 둔덕에 염소를 키우고 밤새 비린 생선의 배를 따며 둔치의 허연 가시 속에서 파랑주의보를 지도처럼 펼쳐들고 그날 죽었던 친구와 영원히 이곳을 떠난 여자에게 양양전도한 뱃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아무도 전도하지 못한 부두의 교회당 목사는 방파제 끝..

한줄 詩 2015.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