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름다움을 건너는 방법 - 이병률
잠을 자고 있는데 철썩 뺨을 올려붙이는 무언가
마지막 기적의 양(量)처럼
차가운 폭포를 등줄기에 쏟아붓는 무언가
눈이 내릴 것 같다
그 무언가 힘으로도 미치지 못하며서
나를 이토록 춤추게 하는 무언가
내 몸 위에는 한 번도 꽃잎처럼 쌓이지 않는 눈,
바다에도 비벼지지 않는 청어 떼 같은 눈,
태생이 함부로여서 눈은 생각이 많다
그 무언가 때문은 아닐 텐테 무언가에 의해
그 아무나 때문도 아닐 텐데 아무개에 의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그날들을 닮으면서 내리는 눈,
오늘 내린 눈을 두 눈으로 받아 녹이고서야
울먹울먹 피가 돌았다
단 한 번도 순결한 적 없이 마취된 척
한 세계를 가득 채운 냄새나 좇으며
허술한 사랑을 하려는 나여
눈이 저 형국으로 닥쳐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란다
이 마을에서 조난을 당해서라도
서로에게 붙들려야 한다면
그 밤 모두 우리는 눈이 멀어야 한단다
*시집,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음력 삼월의 눈 - 이병률
한 사람과 너는
며칠 간격으로 떠났다
마비였다,
심장이, 태엽이 멈추었다
때 아닌 눈발이 쏟아졌고
눈발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가에서 더러워졌다
널어놓은 양말은 비틀어졌으며
생활은 모든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다
불 옆에 있어도 어두워졌다
재를 주워 먹어서 헛헛하였다
얻어온 지난 철의 과일은 등을 맞대고
며칠을 익어갈 것인데
두 사람의 심장이 멈추었다는데
이별 앞에 눈보라가 친다
잘 살고 있으므로
나는 충분히 실패한 것이다
사무치는 것은 봄으로 온다
너는 그렇게만 알아라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걸리집 미자씨 - 김명기 (0) | 2015.02.26 |
---|---|
이발소 그림 - 최치언 (0) | 2015.02.26 |
발생하려는 경향 - 오은 (0) | 2015.02.23 |
별에게 길을 물어 - 정일근 (0) | 2015.02.22 |
마흔, 저 망할 - 성선경 (0) | 2015.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