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 닿는 사람 - 박남준 길 끝에 닿는 사람 - 박남준 다시 나는 먼 길을 떠난다 길은 길로 이어져서 산과 들 강, 저문 날이면 어느 곳엔들 닿지 않으랴, 젊은 꿈과 젊은 밤과 오랜 그리움이 혹여 있을지, 그곳엔들 문을 열면 밤은 더욱 자욱하고 신음소리 쓸쓸하지 않으랴만 더러는 따뜻했어, 눈발이 그치지 않듯이.. 한줄 詩 2016.02.14
용문사 부근 - 이홍섭 용문사 부근 - 이홍섭 울음이긴 한데 어떤 새의 울음인지 몰랐다 -저렇게 새벽까지 울어, 그냥.... 친구도, 나도 만행 나왔다 그냥 국숫집에 눌러앉은 중처럼 하루에도 열두 번 절간을 지었다 허물며 여기까지 왔다 귀신도 선다는 나이가 가까이 다가오는데 귀신은커녕 여지껏 사랑도 서지.. 한줄 詩 2016.02.13
머물기 위해 떠나다 - 김사이 머물기 위해 떠나다 - 김사이 하필이면 가리봉이었을까 세상의 흑백이 치열하게 공존했던 공단지대 구로동 가리봉오거리 끊임없이 날기만을 기다린다 땅 끝에서 떠나온 곳 서울에 올라와서도 몇 달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지하 쪽방 하나 얻어 가방을 풀고 한낮에도 깜깜한, 틈을 비집고 .. 한줄 詩 2016.02.13
주식회사 인생개발 - 장시우 주식회사 인생개발 - 장시우 신림 지나 영월 가는 굽은 길 초여름 무성한 나뭇잎 뒤 숨은 듯 가려진 숯가마 찜질방 간판에 쓰인 주식회사 인생개발 숨길 것도 드러낼 것도 없이 심심하고 헐렁한 이 인생도 뜨겁게 타올라 재가 되는 그 후끈한 치정 한 자락의 난감한 뜨거움을 알 만한 간 .. 한줄 詩 2016.02.12
허리띠 - 서상만 허리띠 - 서상만 서른 해 넘게 멘 허리띠, 오늘따라 구멍이 헐겁다 사시사철 풀만 먹고 살다간 소 뱃가죽 벗겨 만든 이 허리끈이 내 뱃가죽을 싸안고 먼 낙일까지 같이 올 줄이야 젊을 땐, 방자한 헛배 움켜잡고 좀 더 큰소리로 웃던지, 아예 퍽퍽 울어버리라고 아랫배에 힘을 실어주던 내 .. 한줄 詩 2016.02.11
노을에 젖은 언덕에서 나는 - 권오표 노을에 젖은 언덕에서 나는 - 권오표 그 여름 내내 깁던 그물을 거두어 아버지는 하구로 가고, 나는 누님이 접어준 종이배를 따라가다 갈대숲에 짓둥거리며 무너지는 눈님의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았습니다 노을에 젖은 저녁강, 바람개비를 입에 물고 언덕에 서서 나는 지난 밤 오줌 누러 .. 한줄 詩 2016.02.11
홍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은 - 최서림 홍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은 - 서림 대구의 하늘이 내 눈 속에서 홍옥으로 익어가고 있다. 나나 무스꾸리 슬픈 노래를 듣고 있다. 에게海, 햇살 찰랑이는 가을 바다에서 번져나오는 그 깊고 맑은 소리 이 저녁, 나나 무스꾸리를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은 잡풀 시들어가는 내 마음의 하늘 저.. 한줄 詩 2016.02.10
배롱나무께 조아려 - 김병심 배롱나무께 조아려 - 김병심 엄마가 되기 싫을 때마다 산담에 걸터앉아 배롱나무 망연히 바라본다 아이만 낳으면 어머니가 되는 게 아니라고 서른 지나 마흔까지만 참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고 울고 싶을 때마다 배롱나무 가지 어루만져본다 얄망궂은 아이들, 내 잘못과 버릇.. 한줄 詩 2016.02.09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 한줄 詩 2016.02.05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 한줄 詩 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