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인생개발 - 장시우
신림 지나 영월 가는 굽은 길
초여름 무성한 나뭇잎 뒤
숨은 듯 가려진
숯가마 찜질방 간판에 쓰인
주식회사 인생개발
숨길 것도 드러낼 것도 없이
심심하고 헐렁한 이 인생도
뜨겁게 타올라 재가 되는
그 후끈한 치정 한 자락의
난감한 뜨거움을 알 만한
간 큰 인생으로 개발해 주시는지
가던 길 멈추고 한번쯤 고이고 싶은
어정쩡한 이 나이를
제대로 펄럭이게 할 수 있는지
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
훔치고 싶은 환한 하늘 같은
참한 죄 하나 죄책감 없이 탐해도 좋을지
오래 서성이며 묻고 싶은
*장시우 시집, 섬강에서, 천년의시작
화양연화* - 장시우
꽃보다 사람이 먼저 피는 봄날
눈으로 지는 벚꽃 앞에 서면
건너온 저 지평도 물결에 가려지고
다시 돌아갈 길 없어
거룻배 이제 소용없으니
가던 걸음 멈추고
지는 꽃그늘 아래서
혼자 취해 비척이며
혼절한다 해도
저 꽃 때문이 아니라
가슴에 돋을새김한
이 문신 때문이라고
봄이면 되새김질할
순정한 화석 하나 남긴들
*花樣年華: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말한다.
*시인의 말
저물녘에 길을 나서면
세상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건다
발걸음을 늦추고 귀 기울여야만 들리는
작고 낮은 소리들,
나는 매번 그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해 쩔쩔 맨다
그래서 흘려버린 많은 소리들,
언제쯤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귀 밝은 이가 되고 싶다.
나에게 말 걸어 준 세상이 고맙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문사 부근 - 이홍섭 (0) | 2016.02.13 |
---|---|
머물기 위해 떠나다 - 김사이 (0) | 2016.02.13 |
허리띠 - 서상만 (0) | 2016.02.11 |
노을에 젖은 언덕에서 나는 - 권오표 (0) | 2016.02.11 |
홍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은 - 최서림 (0) | 2016.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