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허리띠 - 서상만

마루안 2016. 2. 11. 10:46



허리띠 - 서상만



서른 해 넘게 멘 허리띠, 오늘따라 구멍이 헐겁다
사시사철 풀만 먹고 살다간 소
뱃가죽 벗겨 만든 이 허리끈이
내 뱃가죽을 싸안고
먼 낙일까지 같이 올 줄이야


젊을 땐, 방자한 헛배 움켜잡고
좀 더 큰소리로 웃던지, 아예 퍽퍽 울어버리라고
아랫배에 힘을 실어주던 내 허리띠


군데군데 거죽이 닳아 해져도
여태껏 내 헐렁한 바지 고리에 매달려,


이것저것 볼 것 다 봐도
늘 미적직한 내 삶을 참견이나 하듯 끝내
내 가보지 못한 곳까지 동행하려는지,


오늘따라, 방바닥에 흘러내린 내 바지에
뱀허물처럼 감겨 호젓이 누웠다



*시집, 모래알로 울다, 서정시학








스핑크스 - 서상만



구름밭을 거슬러 아프리카 먼
적소로 끌려가는 황인종 노예처럼, 일없이
너무 오래 살아 죄 많은 자의 가슴은
하늘에서도 늘 허허롭고 두려웠다
보라, 지중해 너머 저 막막한 사막 위로
노을까지 검붉게 시간을 비껴 앉은 나일강,
까맣게 저녁 새 떼 날고
코란의 흐느낌이 눈물처럼 흐르는
저기가, 흠잡을 데 없는 천의무봉 아닌가
너무도 허약한 내 삶의 문장이여
그러나 그 어디에도
완성된 삶과 죽음은 없다
신탁이 예언한 오이디푸스의 운명 앞에
전지(全知)한 스핑크스는 정말 자결했을까
산자와 죽은 자가 뒤바뀐 이 아이러니를
사막을 호령하는 저 날개 단 짐승이
뮤즈의 수수께끼 같은 화두 하나 던진다
꺼져가는 생명 하나 구하지 못하는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대의 질문에 답할 수 없어 슬프다
나는 곧 병든 아내에게 돌아가야 한다
찐득찐득한 흙냄새 나는 나라로,
이 땅, 미쳐버린 오이디푸스는 어디로 갔는지
무덤 앞에 덩그러니, 죽었다는 스핑크스만
영원한 테베의 파수병으로 남았구나
바람소리조차 없는 적막의 사하라에





# 시에서는 긴 여운이 남고 시인의 말에서는 시를 향한 시인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단 두 줄의 명료함이 대못처럼 박힌다.


시인의 말


오십 년 외사랑,
시는 여전히 딴 곳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