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여인숙 - 최장락 바닷가 여인숙 - 최장락 낡은 철대문으로 소금기 절은 바람이 들어왔다. 마당의 빨래들이 어스름한 여름 저녁 만선 깃발처럼 펄럭이고, 어장에서 돌아온 턱수염 까칠한 사내는 막걸리 냄새 풍기며 수돗가에 앉아 하루의 일상을 씻어내고 있었다. 한때 마도로스를 꿈꾸었던 그는 남의 어.. 한줄 詩 2016.03.02
너는 떠나고, 나는 - 강윤후 너는 떠나고, 나는 - 강윤후 그리하여 너는 떠나고 나는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고 너는 떠나게 되었다 바람이 어둠의 등을 떠밀어 전신주들은 긴 그림자에 기대어 건들거리며 휘파람 불고 사람이 아쉬운 마을마다에 불빛들은 반딧불처럼 모여드는데 먼데서 가까운 데로 되돌아오.. 한줄 詩 2016.02.28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박정대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박정대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나의 가슴에 성호를 긋던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면 그뿐 하늘의 구름을 나의 애인이라 부를 순 없어요 맥주를 마시며 고백한 사랑은 텅 빈 맥주잔 속에 갇혀 뒹굴고 깃발 속에 써놓은 사랑은 펄럭이.. 한줄 詩 2016.02.28
시시한 비망록 - 공광규 시시한 비망록 - 공광규 돈이 사랑을 이기는 거리에서 나의 순정은 여전히 걷어차이며 울었다 생활은 계속 나를 속였다 사랑 위해 담을 넘어본 적도 없는 나는 떳떳한 밥 위해 한 번도 서류철을 집어던지지 못했다 생계에 떠밀려 여전히 무딘 낚시대 메고 도심의 황금강에서 요리도 안되.. 한줄 詩 2016.02.23
30년, 하고 중얼거리다 - 김사인 30년, 하고 중얼거리다 - 김사인 -고교 졸업 30주년 30년, 하는 제 소리에 놀라 그는 퍼득 꿈에서 깬다 교련복을 챙기고 도시락을 싸고 서둘러야 할 시간 웬 생시 같은 꿈! 서울로 어디로 떠나 대학생이 되는 꿈 취직하는 꿈 술 담배 배우고 여자도 배우는 꿈 자취로 하숙으로 과외선생으로 .. 한줄 詩 2016.02.21
네가 꼭 채운 나의 배는 - 이선영 네가 꼭 채운 나의 배는 - 이선영 아홉 달째 내 배는 계속 불러오고 있다 배는 단단하게 부풀어오른 반쪽의 공이 되어서 공기와 바람의 벽을 밀고 다니고 공간의 아가미를 둔하게 하고 있다 이 배는 빛도 없는 컴컴한 한가운데 새로운 무엇을 키우고 있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것을 어둠속.. 한줄 詩 2016.02.18
등뼈 기진한 밤 - 황학주 등뼈 기진한 밤 - 황학주 쏘옥 불들이 꺼지고 내 등뼈 기진한 밤에 골목 안 나뭇가지를 너는 스치는 것 같고 아직도 옷궤짝 속에서 상처를 꺼내 입는 것 같다 발을 더듬어 너의 눈물가에 닿는 밤에 오래 떨어지는 한숨 속에 나는 눈알도 무겁고 귀도 무겁게 서 있다 갯벌에 이마를 찍으며 .. 한줄 詩 2016.02.18
결핍 - 김왕노 결핍 - 김왕노 생각해 보니 저 언덕을 넘어 여름이 내게 오지 않았다 북방여치 울어야 할 늦여름의 시기인데 남루한 봄의 슬픔만 아직 내게 죽치고 있다. 밤이 오고 한 초롱 내 목숨에 심지를 담가 등불을 켜야 하는데 불빛을 따라 어린 게 같은 아들딸이 귀가해야 하는데 지축이 흔들려 .. 한줄 詩 2016.02.16
반 지하에 방 한 칸 - 이미자 반 지하에 방 한 칸 - 이미자 -비 오는 날 그는 한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지상에서 아홉 계단 아래 곰팡이 꽃이 피는 당신의 미궁 바람은 무시로 섀시 문을 여닫고 슬쩍슬쩍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나기도 한다 당신은 이런 날 파꽃처럼 붕붕 흔들리면서 빈지하 쪽창을 연다 그러면 창살.. 한줄 詩 2016.02.15
막다른 길 - 박종해 막다른 길 - 박종해 갇혀 있는 와인의 입술을 열어젖히며 코르크 마개를 따자 퐁퐁퐁 새 떼들이 깃을 치며 퉁겨 오른다 촘촘한 굴참나무 숲에서 부화한 새들이 뾰족한 부리로 코르크를 쪼으다 갇혀버린 것일까 와인은 발정난 바다의 가랑이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단숨에 나를 마셔버린다.. 한줄 詩 201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