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을에 젖은 언덕에서 나는 - 권오표

마루안 2016. 2. 11. 08:20



노을에 젖은 언덕에서 나는 - 권오표



그 여름 내내 깁던 그물을 거두어 아버지는 하구로
가고, 나는 누님이 접어준 종이배를 따라가다
갈대숲에 짓둥거리며 무너지는 눈님의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았습니다


노을에 젖은 저녁강, 바람개비를 입에 물고
언덕에 서서 나는 지난 밤 오줌 누러 나온
새벽별 아래 젖어 있는 누님의 길다란 속눈썹을
훔쳤습니다


저녁이면 흰 머리칼 날리며 돌아오는 아버지의
빈 그물에 걸린 노을에 입질만 하고 가는 하릴없는
송사리떼였습니다 그 여름 내내 언덕에서
나는,



*시집, 여수일지, 문학동네








섬, 상처를 위한 - 권오표



그녀는 배냇절름발이였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녀의 아련한 울음이
나를 불렀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로 갔다
그녀는 웅크린 채 무릎을 꺾고 있었다
맨발로 숙인 긴 머리칼에 안개만이 대롱거리며
나풀대고 있었다
그녀의 옆구리는 벌써 많이 상해 있었다
상한 갈비뼈 사이로 울음처럼 동백꽃이
몇 송이 피어나고 있었다


뭍으로 가는 배는 떠나고 없었다





# 시인의 맑은 영혼이 오롯이 전해지는 좋은 시다. 나에게 가족이란 모두 상처였다. 그러나 이런 시를 읽으면 힐링이 되는 것을 느낀다. 눈물 그렁그렁한 누이의 얼굴을 그리며 시인도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 따라 누이가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