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 한줄 詩 2016.05.09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시집, 연어가 돌아올 때, 기탄잘리 아름다운 사람 - 김재진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가까운 사람에게 치여 피로를 느낄 때 눈감고 한 번쯤 생각해보라 당신은 지.. 한줄 詩 2016.05.04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 한줄 詩 2016.05.03
디아스포라의 황혼 - 마종기 디아스포라의 황혼 - 마종기 내가 원했던 일은 아니지만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이제 가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떠나는 것이라지만 강물도 하루 종일 떠나기만 하고 물살의 혼처럼 물새 몇 마리 내 눈에 그림자를 남겨줍니다. 한평생이라는 것이 길고 지루하기만 한 것인지 덧없이 짧기만 한.. 한줄 詩 2016.05.03
수은등 아래 벚꽃 - 황지우 수은등 아래 벚꽃 - 황지우 사직공원(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한줄 詩 2016.05.01
절로 피는 꽃 - 조항록 절로 피는 꽃 - 조항록 겨울이 바람의 팔목을 비틀며 항복을 강요할 적 산수유가 피었다 저기 설움의 아랫녘부터 왜 꽃이 피어나는지 다시 젖 먹던 힘까지 용을 쓰는지 당신이 또 다른 당신의 고통에 무심하듯 겨울은 어쨌거나 봄을 이해하지 못할 뿐 봄은 결코 꽃을 잊는 법이 없는데 겨.. 한줄 詩 2016.04.24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 백인덕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 백인덕 쉴 새 없이 차량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학교 앞 포장마차, 식어 가는 떡볶이와 어묵을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처럼 번갈아 씹으며 자정을 향한 늦은 밤, 이십여 년 전의 그때처럼 난 혼자 되뇌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몇 몇 연구실의 불빛들은 아직.. 한줄 詩 2016.04.24
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 - 고광헌 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 - 고광헌 술에 잘 취하지 않는 건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몸이 너무 겁에 질려 살아와서 그런 것 아닐까 내가 하는 일이 큰 죄가 될 수도 있어 겁에 질린 잠의 세포가 깨어 있는 것 아닐까 정말 취해버리면 틀림없이 저지를 것 같은 광포한 일탈 숨겨온 적의 .. 한줄 詩 2016.04.18
너무 긴 이별 - 강연호 너무 긴 이별 - 강연호 다시는 만나지 않기 위해 그대 만나네 거북 등짝 같은 길을 타박타박 걸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으로 지나치고 싶네 바람 심하게 부는 날 기억의 나무 우우 흔들리면 나무 그늘 속에서 그대의 그늘을 생각할 것이네 마른 강물이 시퍼렇게 흘러가던 한 시절 담뱃불.. 한줄 詩 2016.04.18
동백, 보이지 않는 - 김윤배 동백, 보이지 않는 - 김윤배 1 삼천포 봄볕 따갑다 오래된 밥집 봄 그늘 앉기에 비좁고 억센 손으로 날라오는 생고등어국 입맛 당겨놓는다 냉이와 씀바귀가 오른 식탁은 양지바르다 누군가 소주의 그리움을 갯내음 선한 눈빛으로 말한다 봄에 취한 삼천포 골목집의 늦은 점심은 혼곤하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시인은 두미도 붉은 동백이 숯불 같다며 뱃길을 재촉한다 2 첫 나들이는 붉은 동백으로 설렌다 숯불 같다던 두미도 붉은 동백은 섬을 떠나 낯선 지명을 떠도는지 드문드문 붉은 마음 남아 있을 뿐인데 툭, 하고 수평선으로 커다란 동백 한 송이 진다 꽃 진 자리 붉어 나 오래도록 돌아서지 못할 때 두미도, 남해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는다 3 동백숲에 영험하게 서 있다는 한그루 흰 동백나무는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한줄 詩 2016.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