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마루안 2016. 2. 5. 00:09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 가벼워진 세상의 발들 전(殿)을 돌아 장등(丈燈)이 밝혀주는 대웅전 앞 섬돌을 밟고 오를 시간, 나는 뒷간 무명(無明) 속에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내 죄의 반은 늘 식탐(食貪)에 있다. 법고소리에 기름진 가죽이 함께 울고, 목어의 마른 울음 오장육부를 북북 긁고 간다. 운판(雲版) 소리의 파편이 뼈 마디마디 파고들어 욱신거린다. 선암사 뒷간에 앉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근심을 버리자!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마음을 비우자! 마음은 처음부터 비워져 있는 것이다. 나무 벽 틈새로 스며들어온 꽃샘바람이 주장자(柱丈子)를 들어 내 뺨을 친다.


뱃속 근심이 우주의 근심을 만드는 저녁. 염주알 구르는 작은 원융(圓融)의 소리에도 사방 십리 안 모든 봄나무들이 깨달음의 문을 열어 꽃등불을 켜는데, 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시집,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시와시학사








김룡사(金龍寺) 해우소에서 깨닫다 - 정일근



뱃속의 근심 풀기 위해 해우소에 앉았지요. 우리 나라 절집의 고유한 뒷간이 유일하게 남았대서 찾아온 문경 김룡사 해우소였지요. 보장문 옆 푸석한 기와 인 두 칸짜리 그 해우소에는 나무판자 하나로 등을 가린 남녀가 제 앞을 가리는 문도 없이 앉아서 일을 봅니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엉덩이 까고 쭈그려 앉아 일보는 내 모습 볼까 걱정되고, 용쓰는 소리 등뒤에 앉은 여자에게 들릴까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근심 풀기 위해 찾아온 해우소에서 오히려 주위를 살피는 일이 진땀 바싹바싹 나는 더 큰 근심거리되었지요.


그때 내 등뒤로 늙은 할머니 한 분 들어오셔서 요란한 소리내며 큰일보기 시작했습니다. 흠흠 헛기침하며 뒷자리에 사람 있다고 알렸지만 일보는 틈틈이 더욱 요란한 소리의 곁방귀까지 뀌면서도 여간 당당하지 않았지요. 그리곤 해우소 벽면에 붙은 몸과 마음, 정신까지 깨끗이 한다는 입측오주(入厠五呪) 진언을 빠짐없이 일곱 번씩 외우지 않겠습니까. 옴 사바하 그런 말들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할머니의 다라니 들으며 나는 해우소의 참뜻 조금씩 이해되었지요. 뱃속의 근심이나 그 근심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은 부끄러움이 아니겠지요. 정말 부끄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사람의 일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뱃속의 근심 풀러 와 머리 속에 또 다른 근심 품고 앉은 내 모습이겠지요. 이거구나! 해우소에서 깨달음 하나 얻는 순간 그때서야 불안하게 쭈그리고 앉은 내 자세가 편안해지고 해우소의 모습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두려워 보지 못한 밑을 고개 숙여 내려다보니 열 자도 더 되는 깊은 아래 나무 톱밥 잔뜩 뿌려져 있었지요. 사람들의 근심 덩어리 그냥 받아 모으는 것 아니라 그 근심 풀어버리기 위해 김룡사 스님네들 뿌려놓은 톱밥들이 보였지요. 그 톱밥과 한 몸이 된 내 근심 덩어리도 죄 많은 구린 냄새 지우고 언젠가는 좋은 거름으로 발효될 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나 역시 몸과 마음 시원하게 비우는 일보고 입측오주 다 외운 뒤 일어섰습니다. 해우소 나무 벽에 서툰 동그라미 그리며 뚫린 구멍으로 세한(歲寒)의 날에도 유난히 푸른 잎 단 전나무 한 그루 보였습니다. 근심으로 굽은 마디 하나 없이 하늘 향해 시원스럽게 자란 전나무, 해우소의 일이란 저와 같다고 가르치며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