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 박남준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 박남준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절정을 건너온 매화 꽃잎 바람에 휘날린다 향기로운 매화의 봄은 그새 가고 마는가 이제 내일의 시간이란 짧다 지천명의 나이 꽁꽁 얼음이 얼고 삼월 춘설 백발가를 불러주랴 눈발은 휘날리는데 뜰 앞의 진달래 꽃봉.. 한줄 詩 2016.05.31
어느날 장미는 선인장처럼 - 이응준 어느날 장미는 선인장처럼 - 이응준 어떤 자를 영원히 용서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먹은 1월의 눈 내리는 정오 나는 모래내다방 구석에 혼자 앉아 창 밖 거리를 내려다본다 여기 분위기는 왜 꼭 80년대 같을까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던 병실에서의 날들을 생각한다 내가 밀어주던 휠체어와 .. 한줄 詩 2016.05.28
늦봄과 초여름 사이 - 송경동 늦봄과 초여름 사이 - 송경동 가끔 터번 도는 소리만 한적한 공단 철망길 걷다 장미들의 집단 월담을 본다 녹슨 철망 사이사이 실낱 가지로 뻗어 나왔다가 철망 너머 한 뭉치 붉은 꽃몽우리 터트려 놓은 저 무모한 직설들 꽃을 떨구지 않고는 후진이 불가능한 허공 또다시 누군가의 발 밑 .. 한줄 詩 2016.05.28
그리운 것들은 모두 먼 데서 - 이성부 그리운 것들은 모두 먼 데서 - 이성부 오늘은 기다리는 것들 모두 황사(黃砂)가 되어 우리 야윈 하늘 노랗게 물들이고 더 길어진 내 모가지, 깊이 패인 가슴을 씨름꾼 두 다리로 와서 쓰러뜨리네. 그리운 것들은 바다 건너 모두 먼 데서 알몸으로 나부끼다가 다 찢어져 뭉개진 다음에야 쓸.. 한줄 詩 2016.05.23
시정잡배의 사랑 - 허연 시정잡배의 사랑 - 허연 시정잡배에겐 분노가 많으니 용서도 많다. 서늘한 바위 절벽에 매달려 있는 빨갛게 녹슨 철제 계단 같은 놈들, 제대로 매달리지도, 끊어져 떨어지지도 못하는 사랑이나 하는 놈들, 사연 많은 놈들은 또 왜들 그런지. 소주 몇 병에 비오는 날 육교 밑에 주저앉는 놈들. 그렁그렁한 눈물 한 번 비추고 돌아서서 침 뱉는 놈들. 그러고도 실실 웃을 수 있는 놈들. 그들만의 깨달음이 있다. 시정잡배의 깨달음. 술국 먹다 말고 울컥 누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물가물하지만 무지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그 술국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또 웃는다. 잊어버리는 건 쉽지만 다시 떠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그게 시정잡배의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십팔번 딱 한 번만 부르고 죽자. *시집, 내가 원.. 한줄 詩 2016.05.22
화양(花樣) - 성선경 화양(花樣) - 성선경 아름다운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정일근 시인은 화냥년아, 라고 읽었다. 저, 아름다운 봄날이 화냥이라니? 그렇다. 나는 웃었다. 아, 아름다운 화양이여, 우리는 언제 저렇게 아름다운 화양에 가닿나? 화양연화, 화양연화 노래하면 화냥년아, 화냥년아 그렇게 들리.. 한줄 詩 2016.05.20
꽃의 속도 - 정병근 꽃의 속도 - 정병근 꽃이 저리도 타당한 이유는 캄캄한 밤을 아무도 모르게 걸어 와서 아침에야 문 앞에 환하게 당도하는 그 속도가 너무도 간곡하기 때문이다 미워할 수 없다는 것 당신이 장님이라 하여도 가장 그리운 속도의 황금률을 꽃은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별은 또 길.. 한줄 詩 2016.05.15
꿈꾸는 죽음 - 이창숙 꿈꾸는 죽음 - 이창숙 어둠을 메고 누군가 나를 스쳐가는 서늘함 뜯어먹던 빵 봉지 속에서 마른 풀잎처럼 겨울밤의 손목 시린 바람 울고 오늘도 구멍 뚫린 내 혀를 조금씩 이빨로 잘라 가는 그는 누구인가? 아무도 아픈 내 이름 위에 백합 한 송이 얹지 않으리 무덤이 생긴 뒤 잘려나간 내 .. 한줄 詩 2016.05.15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가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그리고 나는 .. 한줄 詩 2016.05.12
길이 아닌 길 - 이선영 길이 아닌 길 - 이선영 저렇게 잘 닦인 길이 왜 내 길이 아닌가?고 눈에 한참 밟히던 길이 있었다 아마 원주나 제천 가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줄지어 가는 차들의 행렬에 끼여 있었다 세상엔 내가 알거나 모르는 수많은 갈래의 길이 있지만 그 길들은 그저 멀거나 조금 가까운 갈.. 한줄 詩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