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의 노래 - 박성준 회복기의 노래 - 박성준 이제는 괴롭지 않다 나는 여전히 더러운 것을 아름답다 치장할 용기가 없으나 다시 타오르는 대지의 울렁거림과 태양의 비스듬한 고해, 산중의 바위들이 불어대는 입김들을 예감할 수 있으니 조용한 그날의 봄과 나는 오래 싸우고 있는 중이다 세상 어디에도 죽.. 한줄 詩 2016.08.01
나의 아름다운 생 - 이성복 나의 아름다운 생 - 이성복 오늘 아침 내 앞에 놓인 생은 소 여물통 같다 이제는 쓸모없이 툇마루에 놓인 그것은 거의 고단한 기억이나 다름없다 미세 먼지가 그림자처럼 내려앉고 거미줄이 얼기설기한 그곳에 일찍이 나의 양식과 노고와 눈물과 회한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목백일홍의 .. 한줄 詩 2016.08.01
슬픔은 씹어도 남는 것이 없다 - 조숙 슬픔은 씹어도 남는 것이 없다 - 조숙 길게 늘어선 자동차 사이를 돌아다니며 뻥을 파는 남자 하얀 마스크에 모자 눌러 쓰고 가슴과 어깨 양손 가득히 뻥튀기 풍선처럼 매달았다 막힌 곳이면 어디나 뻥 뚫고 나타난다 슬픔은 씹어도 남는 것이 없고 값도 싸다 가벼운 존재이다 뻥이다 뜨.. 한줄 詩 2016.08.01
오래된 시계 - 임성용 오래된 시계 - 임성용 서울 간 누님이 커다란 벽시계를 사온 것은 하마 삼십 년 전이었다 내 어릴 적 설날, 누님은 이쁜 옷을 입고 집에 내려와 가족 사진이 걸린 옷방 봉창벽에 시계를 걸어 놓았다 태엽을 감고 솔방울만 한 추를 흔들면 집 뒤안 대숲에 해가 뜨고 감나무 잎새에 별이 질 .. 한줄 詩 2016.08.01
인연에 관하여 - 박수서 인연에 관하여 - 박수서 그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슨 자기력처럼 오른손이 끌려나갔다 왼손과 오른손의 결합, 맥을 집듯 조심스럽다 속살과 속살이 부둥켜 흔들려야 하지만, 등껍질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물갈퀴질을 하듯 손이 흔들렸다 계속해서 딸국.. 한줄 詩 2016.08.01
두고 온 것이 있다 - 정진혁 두고 온 것이 있다 - 정진혁 시계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단가에 서면 봉숭아 꽃씨 터지듯 흩어져 있다 내 황량한 마음에 꽃잎 비추는 날 다시 갈 수 없는 먼 곳에다 두고 온 것이 있다 누나는 생의 끝을 말아 쥐고 갔다 꽃잎의 문을 열고 가는 누나를 바라보기만 했던 지워지지 않는 꽃.. 한줄 詩 2016.08.01
능소화 - 이창숙 능소화 - 이창숙 장대비 긋는 소리 멈추고 감나뭇잎 사이 길로 능소화 핀다 해(年)를 길어 올린 느긋함이라니 빗물에도 벙긋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길 쪽으로 고개 내밀어 미소진다 호젓한 길, 해 저물어 되돌아와 서면 손닿을 듯 황홍색 입술로 덩굴째 마음 뻗어 오는 것을 장대비로 분을 .. 한줄 詩 2016.07.25
보급소의 노래 - 하린 보급소의 노래 - 하린 형은 바람보급소 사나이 365 365 리듬에 맞춰 페달을 밟는 보급대원 골목은 조간신문처럼 형을 인쇄하네 배달의 기수로 태어나 배달만 하다 훌쩍 점프한 형, 나를 때리네 그날은 대문 앞에 우유가 쌓이고 쌓이는 날 형의 동창 녀석이 이층집 넓은 창문 앞에 서서 눈꼽.. 한줄 詩 2016.07.24
낯설지 마라 - 문동만 낯설지 마라 - 문동만 한 아이가 골목에서 생라면 까먹다 부스러기를 흘린다 가난한 날의 주전부리나 주눅들어 주저앉았던 담벼락 내 오래된 상징, 낯설었지 작업복을 빨아 널며 나는 옆집 빨랫줄을 쳐다보네 엉덩이 쪽에 찌든 기름자국을 나도 모르게 숨기며 망각은 청이끼처럼 자랐네 .. 한줄 詩 2016.07.24
꽃 피는 날은 떠나지 마라 - 이기철 꽃 피는 날은 떠나지 마라 - 이기철 산의 핏줄로 살구꽃 피어나고 흙의 흰 피인 물 흘러간다 오늘 하루도 뿌리들이 흙을 끌어안는 힘으로 견디어 왔다 빈부에 젖은 하루가 놀빛 저녁에 닿으려면 천의 잎새처럼 생각을 길어 올려야 한다 오늘도 생각을 길어 순금을 빚는다 흩날리는 꽃잎 .. 한줄 詩 201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