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속눈썹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건네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받은 사람 온 곳을 모르므로 .. 한줄 詩 2016.08.08
오래된 취미 - 이현호 오래된 취미 - 이현호 기지개를 켠다 창밖 길 건너 장례식장은 불이 꺼졌다 몸이 추처럼 무거운 건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울음소리가 젖은 신문지처럼 꿈에 들러붙었기 때문 흙갈이를 해줘야지 생각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밤새 화분 위로 낯모르는 색이 피었다 전화를 걸어야지 .. 한줄 詩 2016.08.08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면에서 심은 코스모스 길로 꽁지머리 젊은 여자들이 달리기를 한다 그들이 지나가면 그리운 냄새가 난다 마가목 붉은 열매들이 따라가보지만 올해도 세월은 그들을 넘어간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여름이 또 가고 나니까 민박집 간판처럼 허.. 한줄 詩 2016.08.07
항문(肛門)에 대하여 - 최희철 항문(肛門)에 대하여 - 최희철 우연히 딸애의 똥을 닦아주다 항문이 꽃잎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세상의 출구 마치 봉제인형의 마무리 작업 같은 주름이 잡혀 있지 끝없이 존재를 만나다 보면 우주의 끝도 이렇듯 주름이 있을까. 부드러운 힘으로 온갖 부스러기들을 되.. 한줄 詩 2016.08.07
우리는 모두 잊혀질 것이다 - 주종환 우리는 모두 잊혀질 것이다 - 주종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부지런하게 머나먼 세월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잊혀질 것이다 우리의 꿈과 사랑, 욕망과 풍파, 그리고 시의 여백은 아득한 노을빛 속에 묻힐 것이다 흐르는 자취에 거스르는 자치를 더하는 생의지, 그 부단한 자.. 한줄 詩 2016.08.06
나비의 항로 - 허연 나비의 항로 - 허연 기억처럼 더러운 것은 없다 사막까지 따라오는. 아주 먼 길을 왔다. 언젠가는 바다 밑이었다는 북구의 항구도시를 떠나 살 만큼 산 나비처럼 기류에 떨다 밀리고 밀려서 남쪽으로 왔다. 사막, 쓰고 말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곳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 기적이 하.. 한줄 詩 2016.08.06
백일홍처럼 오래오래 - 이운진 백일홍처럼 오래오래 - 이운진 삼백 년 된 백일홍나무가 꽃을 피우는 일은 그저 삼백 년쯤 된 습관이겠거니 짐작했겠지만 꽃을 만드느라 뒤채던 밤이 삼백 년이라면 그 잠은 얼마나 곤할 것인가 이를테면 지금도 삼백 년 전 첫 꽃을 맺었을 때처럼 혹은 방금 햇살을 베어 물고 날아와 앉은 새의 발목처럼 착하지도 죄를 짓지도 못한 채 당신이 내 등줄기를 짚어주던 그 밤처럼 놓지 못한 바람이 보인다면 삼백 년째 백 일 동안 꽃은 얼마나 두근거렸을 것인가 나는 그 꽃 아래서 겨우 서른 몇 날의 그리움을 걱정하였으니 백일홍나무의 몸속에 잠든 삼백 년 된 별을 어찌 알아볼 수 있겠는가 무슨 힘으로 마음을 피우고 지우며 또 피우겠는가 백일홍처럼 오래오래 *시집,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천년의시작 세월 - 이운진 스무 살이.. 한줄 詩 2016.08.05
청춘 1 - 진은영 청춘 1 - 진은영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했다 절여진 생선도 조려놓은 과일도 아니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서성거렸다, 꽃이 지는 시간을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 가랑비에 젖은 자들은 옷을 벗어두고 떠났다 사이만을 돌아다녔으므로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 한줄 詩 2016.08.05
시집을 태우며 - 원무현 시집을 태우며 - 원무현 내 심장이라고 건네주었던 내 심장이라며 가져갔던 시집이여, 귀 기울이면 흐르는 강물의 도도한 소리가 들리고 손 뻗치면 식물이 꽃을 피우기 위해 펌프질하는 소리가 만져진다고 했던 그렇게 자부했던 너를 회수해 불태운다 법에도 없는 법외의 형벌 너무한 것.. 한줄 詩 2016.08.04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 기형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 기형도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 한줄 詩 201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