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 가는 길 - 김종철 폐차장 가는 길 - 김종철 어중이떠중이 시절 기생오라비라 불리던 시절 그때가 참 좋았다 눈물 많고 자주 눈물 흘리게 했던 그때가 정말 그립다 폐차시키기 전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켜보았다 그나마 건재했다 불온한 앞길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정을 참고 미루었던 젊은 .. 한줄 詩 2016.08.14
숙박계 - 이덕규 숙박계 - 이덕규 늦은 밤 후미진 골목 여인숙 숙박계 막장에 나를 또박또박 적어넣어본 적이 있으신가? 밤새 오갈 데 없는 어린 눈송이들이 낮은 처마 끝을 맴돌다 뿌우연 창문에 달라붙어 가뭇가뭇 자지러지는 그 어느 외진 구석방에서 캐시밀론 이불을 덮어쓰고 또박또박 유서 쓰듯 일.. 한줄 詩 2016.08.14
눈부신 길 하나 - 박두규 눈부신 길 하나 - 박두규 저물어 가는 낮은 산들의 어둠 사이로 실오라기 같은 길 하나 눈부시게 떠오른다 그래, 맨몸으로 홀로 빛나는 것들에게는 언제나 슬픔이 묻어 있지 어둠 속으로 피어나는 목숨들, 가을 한 철을 보낸 구절초 같은 목숨들이 저리도 눈부신 게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한줄 詩 2016.08.14
고래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 복효근 고래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 복효근 이 집안은 고래로 고래 집안이다 할아버지가 그랬다고 하고 아버지가 그랬다 구들장 방고래에 불을 안 넘어가도 도갓집 술청에서 고래 목을 타고 난바다는 술술 잘 넘어갔을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고래 등 같은 집은 꿈에도 없었다 가끔 고래가 고래.. 한줄 詩 2016.08.14
감꽃 - 김승강 감꽃 - 김승강 목욕탕에서 목욕은 하지 않고 수영장에라도 온 것처럼 알몸으로 다이빙하며 노는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다 고추 끝에 아직 감꽃을 달고 넘어져 뒹굴고 놀다 어느 날 감꽃을 떨어낸다. 감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안쪽의 감이 자라면서 밀어내어 떨어지는 것이다. 이제 막 감.. 한줄 詩 2016.08.13
길 - 황규관 길 - 황규관 가자고 간 건 아니었지만 간 자리마다 허무 가득한 심연이다 떠나자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두고 온 자리마다 가시덤불 무성한 통곡이다 지금껏 품은 뜻은 내 것이 아니었고 꾸었던 꿈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지나온 길 위에 남긴 흔적에 왜 가슴이 식은 줄 모르는가 멈추자 .. 한줄 詩 2016.08.13
희미해진 심장으로 - 서윤후 희미해진 심장으로 - 서윤후 좋은 일에 쓸 예정이다 오늘치의 어둠을 모아서 어두웠던 것을 빛나 보이게 할 생각이다 단 한 번의 불을 켜기 위해 새가 날아오른다 수비대는 밤새 침묵으로 방어했다 그 무게가 탐나서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어깨와 어깨 사이에 뼈가 있다 두 사람을 잇.. 한줄 詩 2016.08.12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 김점용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 김점용 무주암 2km 이정표를 본 건 확실했다 일주문 대신 대입 합격 백일기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름도 이상한 무폭포를 지나 한참을 가도 암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십 분 이면 나온다 하고 어떤 사람은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 했다 늦단풍 사이로 비구가 걸어 내려왔다 벌써 털신을 신었다 어디선가 풍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가도 가도 암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이는 다 왔다고 저 고개 너머라며 내게 돌 하나를 주었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이 왔다고 되돌아가라며 그 돌을 빼앗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사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한 사람은 오래전에 불타 없어졌다며 돌을 멀리 내던졌다 한 사람은 백 년이 걸려도 .. 한줄 詩 2016.08.12
치명적인 상처 - 박남준 치명적인 상처 - 박남준 별똥별 하나 소원보다 먼저 별보다 먼저 상한 마음이 쓰러진다 한순간 삶이 저렇게 져내리는 것이겠지 흔들리며 가기에 짐이 되었던가 발목을 꺾는 신음처럼 뚝뚝 풋감이 떨어지는 밤 저 별 저 감나무 그 어떤 치명적인 상처가 제 살을 베어내는가 길이 끊겼다 다.. 한줄 詩 2016.08.11
달의 뒤쪽 - 김명인 달의 뒤쪽 - 김명인 비가 온다더니 낮달 떴다 허공에 물어뜯겼는지 반 나마 더 깎인 저기 저 달 아니 아직은 주량을 못다 채웠겠지 앞의 사내가 주인을 불러 다시 소주를 청한다 하필이면 남편이 운전해 가던 차에 곁에 앉은 아내만 즉사했나 살아남은 자 끔찍한 흉금 아무리 채워도 텅텅 .. 한줄 詩 201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