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청춘 1 - 진은영

마루안 2016. 8. 5. 07:47



청춘 1 - 진은영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했다
절여진 생선도 조려놓은 과일도 아니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서성거렸다, 꽃이 지는 시간을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
가랑비에 젖은 자들은 옷을 벗어두고 떠났다
사이만을 돌아다녔으므로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리며
언제나 가뭄이었다
물속에서 젖지 않고
불속에서도 타오르지 않는 자
짙은 어둠에 잠겨 누우면
온몸은 하나의 커다란 귓바퀴가 되었다


쓰다 버린 종이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소리를
밤새 들었다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청춘 4 - 진은영



자신의 핏속에서만 용감하게 달리던 흑기사가 있었다
그때 아홉개 조각난 얼음에 찔린 듯
그때 뜨겁고 붉은 입속에서 찌르던 것들 사라졌다
말할 것이 많았다 말할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행동으로 환원되었다


검은 벽
검은 별과
검은 병이 뒤척이던
향기나는 몸뚱이의 지진


그때 모든 이들은 노래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때를 향해 가수의 입술은 피어나고


우리는 지나간 허기에 대해
닫힌 대지처럼 굳게 입을 다문다



*시집, 훔쳐가는 노래, 창비






# 진은영 시인은 1970년 대전 출생으로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