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리는 모두 잊혀질 것이다 - 주종환

마루안 2016. 8. 6. 09:00



우리는 모두 잊혀질 것이다 - 주종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부지런하게
머나먼 세월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잊혀질 것이다
우리의 꿈과 사랑, 욕망과 풍파,
그리고 시의 여백은
아득한 노을빛 속에 묻힐 것이다


흐르는 자취에 거스르는 자치를 더하는 생의지,
그 부단한 자취의 씻김으로부터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랑거리는 여백처럼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살아 있는 단잠의 그늘 속
이글거리는 불화를 뒤섞는 세월의 유수 속에서
우리는 남몰래 사랑한 가슴으로 잊혀질 것이다


그 잊혀짐 속에 우리의 노을 지는 선술집은
이 세상 여떤 문명보다도 찬란했고,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 발을 동동 구르는 새처럼
둥근 나이테, 그 어느 목마른 세월의 물관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시집, 끝이 없는 길, 서정시학








구름 아래의 인생 - 주종환



내 인생은,
한 편의 파란만장한 사연이 아니라,
짧은 시 한 수로 요약되는,
그래서 그 어떤 사연이라도 담을 수 있는
무진장한 여백이고 싶었다
내가 곧 세상의 모든 이가 이주해서 살고 싶은
이 세상 속의 딴 세상이고 싶었다


이런 미사여구에도 살아보고
저런 형용사에도 날아보고 용처럼 살려다보니
주위 사람들이 다 "아이가,아기가"
혀끝을 차는가 싶었다
나는 곧 그 우려를 씻어내는 참말이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달을 가린 구름처럼
이 땅의 원망이란 원망은 다 들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개었다 흐렸다가 또 날벼락까지 쳐대는
구름의 속뜻 없는 속내처럼
어떤 무용한 유무(有無)의 소산인가도 싶었다
의지를 가지고 내딛는 자리마다 심오한 악수(惡手)였으니
인생은 그 어디서나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오지(奧地)구나 싶었다
내가 한 번 일으킨 물결이
바다의 전부를 다 보여줄 때까지,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삶을 한번 오지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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