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구멍 - 우혁

마루안 2021. 12. 31. 22:19

 

 

목구멍 - 우혁


세상의 모든 병(甁)에서는
비슷한 맛이 난다
차마 울 수도 없던
묵직한 것이
가래처럼 버티고 있다

그들은 영혼이
목구멍 속에 있다고 믿었다
마음은 목구멍 속에서
기도와 식도를 넘나들고
침을 삼킬 때
울컥하고 밀려오는 건
너의 오래된 슬픔

고삽(固澁)의 모양새대로
넌 울 때조차도
목구멍을 벗어날 수 없어
먼지 맛이 나는 어제

우린 늙는다
허나 줄어들지 않는다
그 반복,
나는 분명
너라고

하나밖에 없는
목구멍으로 발화한다

타들어가는 말은
경계에서만 뜨겁다

나의 존재가
시간과 반비례 관계는
아니란 거
어쩜 우린
지독한 영생을 누릴지도 모른다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발바닥 - 우혁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꽃은 피고 지고

더 이상 머무르지 마라

길은 나를 알고 있었고

나는 모든 길 위에서

하나의 기억이었네

머물면 그대로 뿌리가 되는 거고

걸을 때면 비로소 내가 되는 거지

그 걸음이 퇴근 무렵의 골목길에서든

풍경을 밟고 가는 무심한 거리에서든

햇살은 쏟아질 거고

비바람에 쉰내가 배기도 할 거다

절벽 같은 마음으로 길을 핥아본다

나는 길의 미식가

누추하고 남루한 사연은 좀 접자

내가 닿아야 그제야 길이 되는 거고

모질게 뜯어낸 마음 한 자락이

길 위에 꽃잎처럼 흩어지는 거라

바닥을 만나자 떠나는 심정으로

길을 뜨네, 세상을 뜨네

배신의 힘으로 앞으로 가네

모든 걸음에는

반성의 굳은살

밤마다 하늘에 흔적 남기면

모처럼 그림자에 기대 쉬지

나는 가장 낮은 혓바닥

얼얼하고 또박대는 진통의 낱말들

아득하고도 멀다

 

 

 

 

# 우혁 시인은 1970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대 인도어과를 졸업했다. 2002년 <미네르바>로 등단했다. <오늘은 밤이 온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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