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음식에 대한 예의 - 김승강

마루안 2022. 1. 3. 21:35

 

 

음식에 대한 예의 - 김승강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좀스럽다 하겠지요

바닥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는

개미도 먹고 진드기도 먹는다고 하셨죠

잔반은 개도 먹고 돼지도 먹는다고도 하셨지요

저는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버려지는 음식이 아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버려지는 음식이 안타까워요

버림받는다는 건 안쓰러운 일이죠

내가 거두고 싶어요

고아를 입양하듯이

버리려면 나에게 버려주세요

내 위가 음식물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내 몸이 음식의 고아원이 되어도 상관없어요

상한 음식이 아니라면

저를 주세요

음식은 음식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 음식인 거겠죠

그들의 역할이 다하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그게 나를 살게 하고

우리를 식구이게 한다고 봅니다

 

 

*시집/ 회를 먹던 가족/ 황금알

 

 

 

 

 

 

버려진 북쪽 - 김승강

 

 

버려진 북쪽을 위로하기 위해
나는 북면으로 갔다
북면의 북쪽
북쪽을 버리고 남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은 짐짓 동쪽으로 흐르는 척했다
북면에서 북쪽을 버린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강은 흐르지 않는 강처럼 보였다
북면에는 여름에도 눈이 내렸다
눈은 천 년 전부터 내리는 눈이었다
북면의 북쪽
천 년을 하루같이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산비탈 그늘에 잔설이 남아 있었다
한 번도 녹은 적이 없는 만년설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남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집들은 모두 양지바른 곳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북면의 북쪽
강변에서 나는 북망산을 향해 울었다
강 건너 북쪽
북쪽에 등을 돌리고
이쪽을 향해 우는 사람이 있었다

 

 

 

 

*시인의 말

 

오늘도 그가 점심을 샀다

점심을 얻어먹는 대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이야기를 끝내고 먼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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