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부 - 김용태
오래 전 사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등에 걸린 책보가 위태롭구나
밀린 육성회비를 채근하던 선생님,
궁핍한 생활도
체념하듯 원망 않던 순한 아이야
물려받은 크레용으로
회색 하늘을 그려야 했던, 너는
다행히도 아직은
허리 굽은 부모를 가졌구나
오늘은 고단한 너를 위해
먼 훗날 네 여자를 시켜
변변치 않은 찬이나마
더운 밥을 준비 하마
철없는 새끼들 가꾸며
힘써 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만
겨우 허기 달래 줄 살림으로
저녁상을 마주했구나
그렇게 뒷날
네가 나를 살 때
어려 그렸던 꿈마저 펼쳐 주지 못한 채
이 모습으로 너를 맞게 되었으니
염치없는 일이다만
내민 손을 잡아다오
두려워하지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며
운명인 양 걸어서 와 다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나이테에 대한 변명 - 김용태
살아 금강 역사 같던 소나무
큰 바람에 둥치 꺾였다
지난했던 삶의 징표인 듯
들어앉은 옹이
어느 한 고비에서 출렁거렸음을 알겠다
베어 낸 자리
둥글게 키워 나간 궤적에
가만 손 얹으면
지나 온 일들 한 타래쯤 조곤조곤
풀어 낼 것만 같아
어찌 보면 산다는 것은
거친 세월 돌아
겨우 원 하나 새겨 넣는 것이라서
뜻을 하늘에 둔 줄 알았는데
등피 아래로 뭉글진 울음
근본을 아래에 두었음도 알겠다
누구나 옹이 한두 개는
지니고 살다 간다지만
속으로만 삭이다
죽어서야 꺼내 보이는 의젓함이라니
아, 뒷날
내 생 들어낸 자리가
저리 환할 수만 있다면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구멍 - 우혁 (0) | 2021.12.31 |
---|---|
오고 또 오는 - 이은심 (0) | 2021.12.30 |
13월의 달력 - 임경남 (0) | 2021.12.29 |
흔한 낙타에 대한 - 김미옥 (0) | 2021.12.29 |
행성이 몇 번 깜박거려도 - 이정희 (0) | 2021.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