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부 - 김용태

마루안 2021. 12. 30. 21:25

 

 

당부 - 김용태

 

 

오래 전 사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등에 걸린 책보가 위태롭구나

밀린 육성회비를 채근하던 선생님,

궁핍한 생활도

체념하듯 원망 않던 순한 아이야

물려받은 크레용으로

회색 하늘을 그려야 했던, 너는

다행히도 아직은

허리 굽은 부모를 가졌구나

 

오늘은 고단한 너를 위해

먼 훗날 네 여자를 시켜

변변치 않은 찬이나마

더운 밥을 준비 하마

철없는 새끼들 가꾸며

힘써 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만

겨우 허기 달래 줄 살림으로

저녁상을 마주했구나

 

그렇게 뒷날

네가 나를 살 때

어려 그렸던 꿈마저 펼쳐 주지 못한 채

이 모습으로 너를 맞게 되었으니

염치없는 일이다만

내민 손을 잡아다오

두려워하지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며

운명인 양 걸어서 와 다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나이테에 대한 변명 - 김용태


살아 금강 역사 같던 소나무
큰 바람에 둥치 꺾였다
지난했던 삶의 징표인 듯
들어앉은 옹이
어느 한 고비에서 출렁거렸음을 알겠다

베어 낸 자리
둥글게 키워 나간 궤적에
가만 손 얹으면
지나 온 일들 한 타래쯤 조곤조곤
풀어 낼 것만 같아

어찌 보면 산다는 것은
거친 세월 돌아
겨우 원 하나 새겨 넣는 것이라서
뜻을 하늘에 둔 줄 알았는데
등피 아래로 뭉글진 울음
근본을 아래에 두었음도 알겠다

누구나 옹이 한두 개는
지니고 살다 간다지만
속으로만 삭이다
죽어서야 꺼내 보이는 의젓함이라니
아, 뒷날
내 생 들어낸 자리가
저리 환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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