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소문난 가정식 백반 - 안성덕

마루안 2016. 9. 20. 00:02



소문난 가정식 백반 - 안성덕



식탁마다 두서넛씩 둘러앉고
외따로이 외톨박이 하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놓친 끼니때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도
참, 상술 한 번 기차다


소문난 게 야박한 인심인가 싶다가
의지가지없는 타관에서
제 식구 아닌 낯선 아낙이 퍼주는 밥을
꾸역꾸역 우겨넣으며
울컥 목이 멜지도 모를 심사를
헤아린 성싶다고 자위해본다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 소문난 밥집
어머니뻘 늙은 안주인의 속내가
집밥 같다
잘 띄운 청국장 뚝배기처럼 깊고
고등어조림의 무 조각처럼 달다
달그락달그락,
겸상한 두 사내의 뻘쭘한 밥숟가락 소리


삼 년 묵은 갓김치가 코끝을 문득
톡, 쏜다



*안성덕 시집, 몸붓, 시인동네








콩클대회 - 안성덕



초가집도 없애도 마을길도 넓히던
칠공년대 초였지
문래동 방림방직 명자 누님도 양평동 해태제과 미숙이도 내려와
뾰족구두 삣딱뺏딱 무대 위를 누볐지
분내 단내 풀풀 풍기며
따끈따끈한 유행가 한 곡조 간드러지게 불러 젖혔지
추석맞이 무성마을 콩쿨대회 때면
위뜸 아래뜸 삼동네 똥강아지도 신명이 났었지
대낮부터 곤드레 혀가 꼬인 공사판 떠돌이 곰보 만수 성
야, 너 이 가시네
십이열차 타기 전에 한 코 주고 가야 헌다이
삼등 상품으로 양은솥을 받아든 명자 누님 귀에 대고
벌레 먹은 홍시감내를 뱉었지
아 그래, 최고급 탁상시계는
마을회관 코스모스처럼 살랑거리며 나훈아의 고향역을
폼 나게 뽑아내던 나팔바지 종배 성이 받았었지
흐흐흐,
그날 밤 달빛은 또 얼마나 뽀얗고 흐벅지던지
암튼 십이열차 타기 전 간조를 했었던지
만수 성님 그 누님이랑 찌그락짜그락 고추농사 여태 짓는다지
아마 올해가 환갑이라지





*시인의 말


울타리 둘러치듯
또 한 겹 나이테를 껴입는다.
겹겹, 내가 그린 동그라미들
우여곡절의 다른 이름이다.
연필 쥔 손끝이 떨려 삐뚤삐뚤 긋기도 했으며
무언가 써넣으려다가
겨우 점 하나 찍다 만 적 많았다.


세상이 온통 꽃밭이다.
겨울 없이 어찌 꽃이 환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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