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흔들리는 가을 - 이수익

마루안 2016. 10. 17. 01:51



흔들리는 가을 - 이수익



앞으로 또 다시 추운 겨울이 오리라는
예감 때문에
스스로 옷을 벗는 나무들,
물이 마르는 강바닥,
추수로 비어가는 들판,
하늘마저 끝없이 맑고 푸르니.


잠시 무슨 전야의 등불처럼
우리들 마음 어수선히 흔들리고,
나는 무한정 네가 그립고,
바람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하얗게 밤을 새워 나누고 싶은 얘기도 많으니.


오는 겨울에는 눈 막고 귀 막고 입 막고
그저 깜깜하게 어둠으로만 살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면
뼈를 깎는 형벌도 두렵지 않으리니.



*시집, 푸른 추억의 빵, 고려원








가을 편지 - 이수익



네가 오는 것은
눈물겨운 나의 기다림만으로도 족하다.
늘 그렇게 생각한다, 이별은 상처처럼
깊이 두렵고
가슴 저미는 일이지만
너는 왔다간 금세 가야 하니까.


내 마음 위로 한닢 바람기 같은
뜬소문 같은 흔적이나 남겨 놓고
머물렀던 몇날 밤 쌓아올린 정분에도 미련 없이
서둘러야 하는 발걸음처럼, 총총 떠나 버리는 너,


그래도 너를 기다리던 지난 여름 숱한 날들은
달력에 금을 긋고 바닷물의 간만을 지켜보며
한없이 즐겁고 떨리기만 하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더 이상 바람이란
품어서는 안 될 허튼 나의 욕심.
네가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대,


아, 젊은 情夫처럼
잠시 머물렀다간 훌쩍 가 버리는
가을,





# 예전부터 가을이라는 말만 들어도 미치는 성격이었다. 유난히 가을 타는 성격은 나이 들어서 더한다. 쌀쌀해진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저절로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올 가을도 몇 번은 까무러치게 만들고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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