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소를 모는 노인 - 김유석

소를 모는 노인 - 김유석 외딴집을 감고, 고구마순처럼 뻗친 길섶에 소똥 몇 점이 떨어져 있다. 굳은 몸을 푸는 연한 힘, 그것을 발에 묻히고 걸어간 봄은 냄새가 좋다. 삶은 고구마 같은 등성이, 외딴집에서 거기까지가 노인의 길이다. 평생을 오갔어도 항상 초행인 노인의 마음만큼 밑드는 고구마밭이 있다. 무엇을 앞세운다는 건 그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큼이나 정겨운 일이다. 따라가는 길도 문득 홀연해질 때 슬그머니 돌아다봐 주는 눈빛, 무엇엔가 등을 맡긴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길들여짐은 없다. 내외하듯, 여물을 먹는 소의 잔등에 담배를 물고 돌아앉은 노인의 허리가 겹친다. 닮은 것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도 서로의 몸에 마음을 드리우기도 한다. *시집, 상처에 대하여, 한국문연 야생화 - 김유석 꺾..

한줄 詩 2018.03.18

이별 연습 - 박남원

이별 연습 1 - 박남원 우리에게 이별이란 어느 날 지상의 모든 새들이 노래를 멈추고 바다가 안 보이는 저녁산 너머로 하루 해가 숨을 거두는 일과 같은 일이겠지만 꿈이 아닌 현실로서 우리의 운명의 길 위에 더 이상 그대와의 동반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라면 그 동안 우리의 가슴속에 깃들여 살던 사랑의 새를 날려보내자 헤어지더라도 부디 서로의 그리움은 미련 없이 단지 우리의 뒷길에 흔적으로만 남겨놓고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 같은 세월이 그래도 흘러 파도가 모래성을 지워버리듯 서로에게 남은 그리움의 자욱마저 어디론가 데리고 간 먼 훗날 우리들 운명의 기록표에 혹시 먼 발치에서나마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온다 해도 그때에도 서로를 손짓하며 부르지는 말고 가슴 아프게 울지도 말고 힌때 그대는 내 가..

한줄 詩 2018.03.18

썩지 않는 혀 - 김태완

썩지 않는 혀 - 김태완 이미 달콤함을 감지한 혀는 오랫동안 잔잔하게 맴도는 중독성 기억을 뿌리치지 않는다 그 달콤한 기억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다른 참을 수 없는 욕망의 되어 갈취와 폭력에 뒷걸음질치는 허약한 양심 죽을 때까지 썩지 않는 혀 입안에서 철저히 보호되는 조직적인 체계를 입술과 단단한 치아가 유지하고 있다 입술이 타들어가고 남은 치아가 다 빠질 때까지 살면 뭐하나 정말 간절한 것은 달콤한 욕망의 뿌리를 기억에서 지우는 일이다 ..... 헛말을 했더니 혀가 감긴다 젠장! 이게 뭐람 벌떼들이 독침을 품고 내 혀를 향해 몰려드는 *시집, 마른 풀잎의 뚝심, 오늘의문학사 입 안의 사막 - 김태완 갈증은 사막에서 건져 올려진 두레박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한 날마다 사는 일 사막에 가 본 일이 없는데 ..

한줄 詩 2018.03.17